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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란 이런 것이다
2017년 12월 14일 (목)
권우상 wskwan04@daum.net
   
▲ 권우상 명리학자ㆍ역사소설가

 고구려 제14대 봉상왕은 부왕의 탈상도 하지 않은 몸으로 안국군 달가를 살해했다. 달가는 부왕인 서천왕의 동복 아우로서 봉상왕의 숙부였다. 달가는 문무를 겸비한 장수로 숙신을 물리친 공로로 안국군에 책봉됐고, 그 후 행정과 군사의 중요한 직책인 태대형 작위에서 다시 대대노에 올라 왕 다음의 최고 직위를 맡고 있었다. 달가는 부왕인 서천왕의 명령을 받아 숙신뿐만 아니라 양맥 지역을 정벌해 고구려의 통치하에 두는 혁혁한 무공을 쌓았다.

 이러한 탁월한 정치력과 덕망으로 그는 백성들의 신망이 매우 높았다. 누가 봐도 차기 고구려의 왕으로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봉상왕은 태자 시절부터 달가의 명망을 시기하고 질투했다. 그러다가 왕위에 오르자 달가에게 억울하게 반역죄의 누명을 뒤집어씌워 죽이려고 했다. 죄명은 반란 음모를 주도해 왕권을 탈취할 계획을 했다는 것이다. 봉상왕은 태대사자(太大使者) 벼슬인 자봉(子奉)에게 안국군이 스스로 역모를 토설하도록 문초하라고 지시했다. 최고의 벼슬인 대대노를 한참 아래인 태대사자 벼슬에게 문초를 지시한 것은 태대형(太大兄), 주부(主簿) 벼슬에 있는 신하들이 무고한 달가를 죽일 수 없다고 문초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잘못하면 자신들도 역모로 몰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벼슬을 내려놓고 초야로 돌아가 살았다.


 달가를 형틀에 묶어 벌겋게 달군 인두로 혹독한 고문을 하면서 있지도 않은 역모를 토설하라고 다그쳤지만 달가는 “나는 역모를 꾀한 적이 없으니 죽어도 토설할 것도 없다.” 하자 달가에게는 더욱 참혹한 고문으로 사지가 갈기갈기 찢기면서 달가는 고통스럽게 죽었다. 죽으면서 그는 봉상왕에게 말했다. “너도 언젠가는 나처럼 참혹한 죽음을 맞을 것이다.” 조정 신하들은 하늘이 분노했다면서 억울한 누명으로 참혹하게 죽은 달가를 몹시 애통해했다. 백성들도 폭군이 덕망 높은 달가를 죽였다고 하면서 가슴을 치고 한탄했다.

 백성들은 달가를 외적을 물리칠 수 있는 유능한 인물로 믿었는데, 그가 죽자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이 같은 불안은 곧 백성들의 민심 이반으로 나타나 국론이 분열돼 고구려의 정국은 큰 혼란에 빠졌다. 봉상왕은 누군가가 왕위를 찬탈할 목적으로 역모를 꾸미고 있다고 의심하면서 불안감에 시달려 친동생인 돌고(乭高)에게 역모의 죄를 뒤집어씌워 스스로 자결하도록 명령하자 돌고는 비통해하면서 칼로 목을 찔러 자결했다. 이때 돌고의 아들인 을불(乙佛)은 아버지가 억울하게 역모로 몰려 죽자, 시골로 야반도주해 몸을 숨긴 덕에 가까스로 죽음을 면하게 됐다. 봉상왕은 누군가 모반을 획책할 것을 염려해 간신히 몸을 피한 돌고의 아들 을불을 죽이기 위해 전국에 군사를 풀어 잡아 들이도록 명령했지만 을불은 좀처럼 잡히지 않자, 봉상왕은 현상금까지 내걸고 전국 곳곳에 방을 써 붙였지만 을불은 잡히지 않았다.

 산골 마을에서 머슴살이를 하다가 주인의 포악한 행실에 견디지 못해 소금장수를 했지만 주막에서 주모의 억울한 도둑누명에 소금을 몽땅 빼앗긴 신세가 돼 두만강 가람가에서 뱃사공으로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동안 왕위 계승자로 을불을 찾아다니던 대신 소우, 조불에게 발견됐다. 처음엔 봉상왕의 첩자인 줄 알고 을불이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소우에게 자신을 찾는 이유를 알고 그는 실토했다. 을불은 힘겨운 삶을 살아오느라 얼굴은 깡말랐고 몸은 뼈만 앙상했다. 게다가 땟자국이 묻은 옷은 남루하고 머리카락은 지저분하게 헝클어져 있는 모습 때문에 아무도 그를 왕족이라고 의심하거나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때 봉상왕은 도성 밖에 있는 후산으로 사냥을 가게 됐다. 국상 창조리와 조불, 소우 세 대신은 왕과 함께 사냥길에 올랐다. 사냥을 하던 봉상왕이 잠시 행궁에서 쉬는 사이 창조리의 명령에 따라 군사들은 봉상왕을 체포해 참살했다. 창조리는 을불에게 옥새를 바치고 새로운 왕으로 옹립했다. 소금장수와 머슴살이로 20여 년 동안 불행하게 살았던 을불은 늦게나마 왕위에 오르게 됐다. 이 분이 고구려의 제15대 왕인 미천왕이다. 운명이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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