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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머리 앤의 호기심
2017년 12월 18일 (월)
은종 7618700@kndaily.com
   
▲ 은종 시인

 키우는 아이가 쉴 사이 없이 질문하는 바람에 귀찮아서 ‘제발 그만’ 하고 소리로써 윽박지르거나 질문을 가로막았던 경험을 자주 가져 보았을 것이다. 오히려 곁에서 몇 초라도 얌전한 자세로 있어 주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데 이것은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이 겪는 체력의 한계와 상황이나 환경, 여건 등이 맞물려 생기는 일시적인 충돌일 뿐, 진정한 바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 아이들은 이렇게 끊임없는 질문을 해서 주위를 환기하는 것일까? 사물과 맞닿았을 때 일어나는 호기심 때문이다. 우리가 낯선 곳에서나 사람과 마주쳤을 때 생기는 느낌 등을 마음의 지도에 따라 나름대로 그려보듯이 아이들은 그런 의문을 질문으로 표현하는 것이리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풍부한 창의력을 보유함으로써 자신의 진보를 꾀하는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창의력 기르기는 끊임없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처음 대면하는 것들을 인지하는 능력은 수 없는 질문과 대화를 통해 키운다고 해도 과장된 표현은 아닐 것이다. 오래전 겪은 일이지만 필자가 알고 있는 한 아기가 돌을 지날 즈음, 손가락으로 사물을 가리키며 “잉거? 잉거?”(이게 뭐야?) 하고 쉴 새 없이 질문하는 것을 눈여겨본 적이 있다. 질문에 대강 얼버무리면 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반복하는 것이었다. 그 아이가 원하는 대답의 유형은 단답형이 아니라 그 주제에 맞는 자세하고 흥미로운 설명을 원하는 것이었음을 이내 알게 됐다. 아이들의 반복되는 질문에 귀찮아서 대강 답해 버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왜?”, “어떻게?”라는 의문 사항을 “잉거?”라는 질문을 통해 사물에 여러 형태의 옷을 입혀서 자세하게 설명해 주기를 바라는 그 아이의 마음을 알 기회였다. 아이들이 호기심을 내비칠 때,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자라나는 아이에게 또 다른 창의력을 갖게 만들며,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나아가서 제 일을 처리하는 데에서도 색다르고 유쾌한 결론을 도출해내는 데 도움이 된다. 이와 반해 호기심이 왕성한 연령인데도 사물을 보면서 아무 느낌 없이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아이들에 대해서는 부모들의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리라 본다. 우리 아이가 자라면서 대부분 시간을 빼앗겨버리는 곳이 어디인지, 그들의 관심사와 활동영역을 살펴봄으로써 사물에 대한 탐구와 그에 따른 발견의 기쁨을 누리도록 관심의 회로를 바꿔줘야 한다. 아이들의 사고는 폐쇄적이거나 기계적인 것에서는 사고의 확장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100여 년 전 ‘루시 M.몽고메리’의 작품 ‘빨강 머리 앤’에서 사물에 대한 관찰력과 호기심이 끊임없이 일어나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왕성한 상상력을 지닌 주인공 ‘앤’을 만나볼 수 있다. 앤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매슈’와 ‘마릴라’라는 남매가 사는 집에 입양하게 된다. 앤이 그들과 살게 된 집 근처에는 평소 지니고 있었던 사물에 대한 호기심과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자연이라는 무대가 있었다. 자작나무, 개암나무, 가문비나무가 가로수로 우거져 있고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 강 위로 번져 가는 저녁노을 풍경, 공기와 바람, 온갖 꽃들과 들풀,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 하얗게 내리는 눈, 교회의 종탑, 성가대에서 울려 퍼지는 맑은 노랫소리, 동쪽 하늘을 향한 앤의 방, 그 방에서 바라보는 친구 다이애나의 저택, 소를 몰고 오는 귀갓길의 풍경 등 앤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는 것들이 없다.

 특이한 것은 이 모든 사물에다가 이름을 짓는 것이었다. 그녀의 사고체계 속에는 쉴 사이 없이 자연과 사람에게서 얻어내는 질문들이 들어 있다. 정적이고 고요한 것에서 얻었던 수 없는 질문들이 공간을 초월해 동적인 삶에서 열매를 맺게 된다. 자기를 키워준 마릴라 아줌마의 시력이 점차 상실돼가는 것을 외면하지 않고 책임지기로 마음먹고 공동체 삶의 상징적 의미인 ‘초록 지붕’을 지키고자 하는 앤의 태도에서 공감 능력을 엿볼 수 있다. 그녀는 자신보다 타인을 위할 때 비록 그 길이 좁고 모퉁이가 있어 앞이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딘가에 행복의 꽃이 피어나리라고 확신했다. 고아였던 한 아이가 ‘왜, 어떻게’라는 질문과 호기심으로 창의력을 발휘해 사람을 감동하게 한 이야기, 지금 우리 곁엔 또 다른 꼬마 앤들이 많이 자라나고 있다. 호기심 어린 눈빛을 반짝이며 상상의 날개를 달 때 깃털을 받쳐주는 공기가 돼 주는 일, 우리에게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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