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22:35 (금)
아버지의 뒷모습은 쓸쓸하다
아버지의 뒷모습은 쓸쓸하다
  • 정영애
  • 승인 2017.12.18 22: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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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영애 금성주강(주) 대표이사

 영하 11도의 맹추위가 몰아친 날 서울의 한 낡은 흙집에서 불이 났다. 불타 허물어진 집을 수색하던 소방관 앞에 노인 한 분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이 신원을 파악해보니 79세 된 독거노인이었다. 그 분은 28년간 군 복무 중 베트남 전쟁에도 2년간 참전했다. 전역 후 고엽제 후유증으로 청력을 잃고 거동마저 불편한 몸으로 막일을 하며 지냈다고 한다. 생활이 어려워지자 아내마저 곁을 떠나고 자식들과도 별거하며 혼자 살았다. 정부 기초생활비로 겨우 생계를 꾸리다 보니 도시가스도 끊고 부탄가스로 난방 겸 취사를 하며 살다가 화마를 당했다고 한다. 생전에 그분은 조모의 산소가 있는 전남 목포로 낙향해 살기를 소망했으나 수구초심을 이루지 못하고 끝내 이 세상과 하직했다. 신문기사를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경제력을 상실한 독거노인의 비참한 최후. 힘없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쓸쓸하고 허망했다.

 올해 말에 우리나라도 고령사회에 접어든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인구의 14%를 넘어서서 730만 명에 이르게 된다. 그중 독거노인이 20%인 140만 명이라고 한다. 문제는 독거노인의 상당수가 빈곤층으로 생활고를 겪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자식이 있지만 동거하거나 봉양을 받지 못한 채 방기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기초생활 급여와 노령수당에 의지해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에 화마로 숨진 그분도 자식은 있었지만 생활비 한 푼 받지 못했다고 한다. 자식들도 살기 힘든 세상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부모의 삶을 나라에 맡긴 채 손 놓은 셈이다. 이런 독거노인 세대가 어디 이 분 뿐이겠는가. 해방 후 한국전쟁의 참상과 찢어지게 가난한 삶에 짓눌러 살면서도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악전고투한 끝에 자식들은 대학 보내고 출가시켰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은 허물만 남은 채 빈 둥지 신세로 전락했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한국의 은퇴세대 70%가 노후준비를 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이는 OECD 35개국 중 노인 빈곤율(45.1%) 최상위가 증명하고 있다.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며 대외 무역고가 1조 달러에 달하는 나라의 위상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 늙고 병들어 죽는다.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죽는다면 탄생 그 자체가 비극이다. 물론 이런 모순은 우리나라만 겪는 현상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2차 대전 후 유일무이하게 세계 최빈국에서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룩한 국가다. 이처럼 빛나는(?) 대외위상과는 달리 노인세대가 홀대받는 천덕꾸러기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국가적 수치가 아닐 수 없다. TV 화면에 비치는 화려한 서울의 겉모습에 가려진 채 복지의 사각지대에 방기된 채 살아가는 쪽방촌 노인들의 초라한 모습을 보면 서글퍼진다. 장수가 축복이 아니라 저주처럼 느껴지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유구무언이다.

 내가 잘 아는 지인 중 글을 쓰며 노년을 활발하게 사는 분이 있다. 그분 역시 독거노인이다. 지난해 모 시의 노인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들은 얘기인데 자식들로부터 정기적으로 생활비나 용돈을 받는 노인은 10%도 채 안 되는 것으로 들었다며 탄식했다. 물론 추석명절이나 생일 때 얼마간의 용돈을 받는 것은 예외로 치고 한 말이다. 자신은 현역에서 물러난 2년 전부터 자식들로부터 많지는 않지만 일정 금액의 용돈을 매월 받고 있다고 했다. 아직 글도 쓰고 최저 생활비 정도는 벌어서 생활하는데 왜 용돈을 받느냐고 물었다. 그분도 전에는 용돈을 받지 않았는데 부정기적으로 수입이 생기다 보니 생계 불안을 느껴 용돈을 달라고 했다고 한다. 다행히 자녀들이 착해선지(?) 매달 꼬박꼬박 용돈을 보내 생활에 보탬이 된다고 했다. 나이가 들었다고 돈 쓰는 용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형제들이 많고 사회 출입이 많으면 돈 들일이 많은 법이다. 그러나 이 분처럼 나름 자립능력이라도 있는 분이라면 모르지만 70~80대 노년층 대부분이 힘든 시대를 사신 분들이라 자기개발은 엄두도 못 냈다. 그런 희생 덕분에 자식들은 대학까지 공부시켰지만 정작 자신의 노후는 속 빈 강정이 돼 버렸다. 갈 길이 아직 먼 자신의 여생은 고독과 빈곤한 삶뿐이다. 요즘 언론에 자주 보도되는 부모에 대한 자식들의 패륜 행위는 더 이상 들먹이기 싫어서 각설한다.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받은 카톡 메시지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라는 글이 구슬픈 배경음악을 깔고 흘러내려 가슴이 찡했다. 마지막 연의 글이 마음을 울린다. “아버지의 가슴은 가을과 겨울을 오고간다. 아버지의 술잔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란 뒷동산의 바위 같은 이름이다. 시골 마을의 느티나무 같은 크나큰 이름이다.” 그래서 아버지의 뒷모습은 쓸쓸하기 그지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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