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8 19:06 (목)
화선지 위 묵선에 내비친 `우리 그림 얘기`
화선지 위 묵선에 내비친 `우리 그림 얘기`
  • 어태희 기자
  • 승인 2018.01.16 2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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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자 김해도서관 전시회 수묵담채ㆍ민화 30점 전시 전통에 현대적 시각 입혀
▲ 작품 잔설(162x130㎝, 화선지에 수묵담채) 옆에 선 김영자 작가.

 하얀 화선지 위로 검은 묵선이 뻗는다. 거침없이 휘날리다 다시 이리저리 꺾은 뒤에는 잎사귀 하나 없는 동목이 탄생된다. 물을 잔뜩 머금은 먹이 화선지 이곳저곳에 몸을 뉘이더니 어느새 눈길이 완성됐다. 쌓인 눈은 햇볕을 받아 물기를 머금고 조금씩 흘러내린다. 차가운 겨울의 풍경이지만 따스한 햇볕에 녹아내리는 눈이 느껴진 탓일까, 어쩐지 작품을 바라보는 이의 뺨 언저리까지 따스함이 와 닿는다.

 이 풍경을 껴안은 작품은 김영자 작가의 `잔설(162x130㎝, 화선지에 수묵담채)`이다. 화가로서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싶다는 김 작가는 16일부터 오는 21일까지 김해도서관 갤러리 가야 2전시실에 `우리 그림, 그리고 이야기 전`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수묵담채화와 민화 작품 3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두 가지로 나눠진 입구를 볼 수 있다. 한쪽은 민화, 한쪽은 수묵담채화다. 색을 최대한 절제한 김 작가 특유의 담채가 느껴지는 수묵화 작품들과 달리 민화는 형형색색의 색감이 보는 눈을 즐겁게 만든다. 김 작가는 한국화 중에서도 이 두 분야에서 `우리 그림`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 김영자 작가가 관람객과 민화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수묵화는 선비 등 상유계층들이 산과 물 같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표현하고자 향유한 예술이죠. 전인적 인간이 되고자 한 선비들의 심신수양이기도 했죠. 그러나 민화는 서민을 위주로 시작됐습니다. 잘 먹고 잘살고자 하는 속세적 의미가 그림 속에 있어요. 그림 하나하나에 의미와 상징이 있기에 찾아오는 분들에게 `이야기`를 통해 이를 알려주고자 해요. 그래서 `이야기 전`이라고 지었죠."

 꽃은 가정의 화목을 의미하고 인장은 권력과 권위를 상징한다. 언뜻 눈으로 훑고 지나갈 수 있지만 그림 속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색다르고 즐겁다.

▲ 작품 봉황도(40x70㎝, 닥지에 분채).

 김 작가가 그린 민화 대부분에는 낙관(落款)이 찍혀있지 않다. 시대에 따라 변용돼 온 모사(模寫)작품이어서 그렇다. 그러나 그 중 `봉황도(40x70㎝, 닥지에 분채)`를 포함한 5개 작품에는 김 작가의 낙관이 찍혀있다. 이 작품들은 그가 새로운 채색과 해석으로 변용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민화에 사용되는 빨갛고 파란 단색들은 그저 강렬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어쩐지 옛 정취가 있는 색이다. 김 작가는 도색 전 먹물 한 방울을 섞는다고 한다. 김 작가는 "그저 화려하고 강렬한 색에 먹물 한 방울을 섞으면 더 부드러워진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먹을 좋아한다. 그저 그림을 그리고 싶어, 붓을 들고 싶어 찾았던 김해의 한 서실에서도 문 앞에 걸린 사군자 그림이 그렇게 매력적이었고 먹 냄새에 가슴이 떨렸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그저 그림만으론 살 수 없다는 현실에 부딪혀 그림을 배우지 못했어요. 그러나 서실에 발을 들이고 한국화 선생님을 만난 이후 그 욕구가 점점 해소되는 것 같았어요. 서예로 시작한 붓이 이제는 수묵화를 그리고 있으니 지금은 너무나도 만족스럽습니다."

 수묵담채화는 먹과 물과 종이가 담은 우연의 겹침이다. 화가가 그리는 의도 위에 의도하지 않게 퍼져나가는 우연이 수묵담채화의 멋이고 아름다움인 것이다. 김 작가는 이를 수묵담채화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는다.

 "먹, 물, 종이 그리고 나. 이 네 가지 요소에 `우연`이 합쳐져야죠. 특히나 그리는 이의 마음이 중요한데, 최근에는 마음의 준비가 덜 된 듯 원하는 대로 그리지 못했죠. 이번 전시를 열고 여태 그렸던 작품들을 다시 되짚어보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요. 아, 먹그림이 고픕니다."

 김 작가의 올해 목표는 역시 잡은 붓 아래 수려한 묵선이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수묵담채화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이전과 같이 자연만을 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모습과 삶을 담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수묵담채화를 그리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올해 목표를 전하는 김 작가의 모습에서 언뜻 먹 냄새가 나는 듯했다. 우직하고 단정한, 투박하지만 섬세하고 아름다운 묵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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