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7 02:47 (수)
달라질 것이라고 믿으며…
달라질 것이라고 믿으며…
  • 이주옥
  • 승인 2018.01.30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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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옥 수필가

 국가나 개인의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강력한 방해 요소는 불합리나 부조리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이 기나긴 역사를 이어오는 동안 온몸으로 맞서다 희생한 선각자들은 그런 구태의연하고 답보된 상황들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 일등공신들이었다. 나라가 주체성을 잃고 힘을 잃고 결국 빼앗김을 당하는 동안에 그들이 보여 준 희생과 노력은 얼마나 고귀하고 위대했던가. 그들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이나마 안위와 평화를 누리고 있다는 생각에 새삼 고마워진다.

 무엇이건 오랜 시간 이어져오고 유지돼 오던 것들이 단 몇 사람의 노력에 의해 단번에 바뀌기는 쉽지 않다. 사소한 개인의 습관도 바꾸기가 쉽지 않은데 하물며 한 나라의 역사관이나 정치형태 그리고 국민의 의식을 바꾸기가 그렇게 쉽겠는가. 그러다 보니 어느 한 개인의 항거나 항변은 몸부림에 지나칠 때가 태반이며 그야말로 제 한 몸 희생에 그치고 말 때가 허다하다.

 영화 한 편이 새삼 오늘날의 우리의 입장이나 상황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대통령이 관람해서일까. 아니면 ‘그런다고 달라지지 않겠지만’이라는 영화 속 대사가 시대의 아픔을 반영하고 있어서일까. 스물두 살 평범한 대학생이 경찰 조사를 받다가 석연치 않은 죽음에 이르렀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끊임없는 설왕설래는 해마다 묘비를 쓰다듬는 그의 어머니의 가슴에 못 한 개씩이 늘어나기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 당시 그의 죽음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이 쏟아져 나옴으로써 어쩌면 상상 이상의 사실들이 밝혀질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는 일에나 자신이 맡은 업무에 본인의 소신이나 관념, 의식을 대입시키면서 진행하고 이어나간다. 그러면서 간혹은 시행착오를 일으키거나 오류를 발견하면서 개선하기도 하고 경로를 재탐색하기도 한다. 그런 중, 때론 무위가 되기도 하고 절망스럽기도 하지만 결국은 목적지까지 가는 데 필요한 최선의 방법이기도 하다.

 김승섭 고려대 교수의 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읽었다. 그는 의대를 졸업했지만 의사보다는 사회 역학자를 택했다. 누구도 인생에 분명하고 정해진 길은 없겠지만 어떤 의식을 지니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본인은 물론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백팔십도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소수자의 아픔에 공감하면서 그의 인생행로에 변화를 주었고 ‘잘 살고 싶었다.’는 그의 바람을 실현시켰다고 했다. ‘시공간을 초월해서 적용하는 진리는 바보 같은 생각’이라는 칸트의 판단력 비판처럼 개개인의 아픔을 진리라는 대 명제에 입각해서 무시하고 간과하지 말자는 얘기일 것이다. 그는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아픔을 그냥 아픔으로 넘기지 않고 당사자 입장에서 세세하게 어루만지는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런 그의 남다른 생각은 그의 인생에 변화를 주었고 우리들의 삶에도 새로운 명제와 사고의 영향을 끼쳤다. 어떤 상황이나 아픔도 그러려니 하는 단정은 발전과 변화의 발목을 잡는 지름길이 된다는 것을 새삼 깨우치게 됐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의식과 행동은 소시민이나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엄청난 파급효과가 있다. 그들이 행하는 작은 변화가 결국은 사회와 국가를 변화시키고 또 발전시키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의 행보에 열렬히 박수를 보내는 것도 기득권이 장악했던 세상일지라도 변화를 꿈꾸는 한 사람 한 사람에 의해 달라질 것에 대한 희망과 기대의 반증이 아닐까.

 어떤 일에 건 누군가는 앞장서서 움직이지만 한 개인의 작은 몸부림이나 미약한 항거로 끝났던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처음부터 ‘그런다고 달라지지 않는다’는 부정은 절망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누군가 의욕을 내는 일에 주변인으로서 우리의 역할은 긍정적인 격려와 응원이다. 응원을 받으며 하는 일에는 힘이 생기고 명분도 더욱 고취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은 명분을 세우고 행함에도 박차를 가하게 한다.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보다는 분명히 달라질 것이라는 의지와 희망이 삶에 있어 가장 바람직한 변화의 동기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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