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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하지욕(袴下之辱)의 이중적 의미
2018년 01월 31일 (수)
김혜란 7618700@kndaily.com
   
▲ 김혜란 공명 소통과 힐링센터 소장ㆍTBN 창원교통방송 진행자

 과하지욕(袴下之辱)이라는 고사성어는 초등학생들도 배운다. 한나라 개국공신 중 한 사람인 한신은 가난하게 살면서 하릴없이 빈둥거리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동네 건달과 싸움도 날 뻔했는데, 건달이 한판 붙자고 했더니 싸우기 싫다며 건달이 시키는 대로 그의 가랑이 사이를 지나갔다는 이야기다. `가랑이 밑을 기어가며 치욕을 참고 훗날을 기약한다`고 일반적으로 해석하는데 사람마다 상황마다 해석이 다양하다.

 야당 전 대표 입에서 `자유한국당의 가랑이 밑을 기라고 해도 그렇게 하겠다는 심정`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바로 심상정 의원이다. 정의당 전 당대표이기도 한 심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국정과제인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다며 더불어 민주당 추미애 대표를 향해 공개편지를 썼다. 추 대표에게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에 관한 역할론을 상기시킨 것과 동시에 최선 다해 협력하고 힘든 일도 마다않겠다는 뜻을 담았다고 본다.


 심상정 의원의 `자유한국당의 가랑이 밑이라도 기겠다`는 심정에 울컥한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은 여야 가릴 것 없이 초심을 잃어가고 있다. 여당은 촛불집회가 이끌어낸 정권교체를 통해 국민의 바람을 협치의 방법으로 최선 다해 이룰 것을 약속했다. 거대 야당은 여당이 독주하려 한다면 반드시 막겠다고 국민 앞에 역시 다짐했다. 지금 이합집산 중인 다른 야당들도 참신하고 소신 있는 당의 역할을 말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약속과는 다른 모습들을 보이고 있다. 여당은 야당 시절의 정치 스타일을 아직도 구사하고 있는 것 같다. 정책을 펴는 과정에서 다른 당이 반대하거나 문제를 지적하면 날카롭게 반응하며 의도나 말에 대해 자잘하게(?) 부정하고 그쪽을 공격한다. 분명히 이전 시절 야당이 주로 썼던 방법이다. 크게 감싸 안은 협치류의 정치는 잘 안 되고 있다. 거대 야당은 10년의 권세 끝에 촛불벼락 맞아 찾아온 야당 시대를 받아들이지 못해 꽤 힘들어하더니, 야당으로서 할 수 있는 최악의 수들을 쓰고 있다. `반대를 위한 반대`와 `아니면 말고` 식의 막말 잔치 술수들을 통해 바람직하지 않은 야당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당ㆍ야당 할 것 없이 자신들이 하는 일들이 `국민이 원하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대통령 지지율을 담보로 정부와 여당이 하는 모든 일들을 다 지지하겠다고 어떤 국민이 그랬는가. 야당더러 무조건 반대하라고 어떤 국민이 말했는가. 누가 모자란 고민과 어쭙잖은 명분으로 이전투구하라고 요구했는가. 혹시 이전의 국민과는 다른 국민들 말인가. 설사 일부 국민이 원했다 해도, 대부분의 국민은 그런 모습을 기대했던 것이 아니다. 그 국민의 출처를 캐고 싶어진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갈수록 점입가경인 정치권의 싸움 속에 가장 많이 들고나오는 국민은 어쩐지 정체가 모호한 누군가인 것 같다. 혹시 AI일까.

 심상정 의원은 이 정부의 국정과제를 아직도 기억하고 국민들과의 약속을 혹시라도 정치권이 지켜내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심정일 것이다. 이대로라면 지방선거에서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이 어려울 것이라고 보기 때문은 아닐까. 아무리 소수 야당이지만 같은 정치권으로서 책임 있는 목소리를 낸 것이고 천하의 `철의 여인` 심상정 의원이 `자유한국당 가랑이라도 기라면 기겠다`는 표현은 너무도 절실한 양심정치의 발로일 것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당들이 보여주는 이러저러한 모습들, 혹은 개인의 영달을 이루기 위해 약속 따위는 헌신짝처럼 버렸거나 이미 접어버린 또 다른 예비정치인들의 얍삽한 `국민 타령`을 이제는 그만 보고 싶다. 그들에게 국민은 무엇인가. 권력 잡기와 영달추구의 수단일 뿐인가.

 다시 과하지욕(袴下之辱)을 떠올린다. 울컥한 심정이 다른 증오로 변할 수 있다. 사마천이 직접 한신의 고향을 찾아가서 보고 들은 바를 사기에 썼다고 전해진다. 다양한 해석은 좋지만 개인의 영달과 권력을 갖기 위한 이야기로 해석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국민은 반드시 외면하고 응징할 것이다. 지금은 이렇게 이야기라도 한다. 국민이 가진 물의 습성을 잊지 마시라. 배를 띄우기도 하고 엎어버리기도 한다. 잘 알다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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