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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다양한 삶 모습ㆍ역동성 담자
도시에 다양한 삶 모습ㆍ역동성 담자
  • 이덕진
  • 승인 2018.02.06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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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진 문화학박사 동의과학대 교양 교수

 도시에서 재생은 이제 관심거리를 넘어서 보편적 패러다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시간의 변화에 느리게 대응하거나, 아니면 시간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채 버려진 유휴공간이 이제 재생의 대상지로 각광을 받는다. 재생이 지금 도시에서 화두가 된 것은, 낡고 오래된 것을 불도저로 모두 밀어버리고 크고 새로운 것만을 짓는 재개발의 물신적 풍요로 인해 도시의 시간성과 장소성이 상실되는 데 대한 반성에서 비롯됐다. 지금은 ‘경제성장’에서 ‘축소균형’의 시대에 도래했다.

 도시재생이 이슈가 되면서 창조도시가 주목됐다. 자신이 갖고 있는 내재된 잠재력을 스스로 키워 다른 도시와 차별화되는 경쟁력을 확보해 도시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 도시가 창조도시이다. 창조도시의 개념을 가장 먼저 언급한 제인 제이콥스의 저술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그녀가 목격한 미국 도시들의 교외화와 도심 슬럼 재개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어떻게 하면 도시가 지역민들의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자생적으로 재생될 수 있을지 탁월한 비전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시간의 켜에 층층이 쌓아 올린 다양한 인간들의 삶의 모습과 그 삶의 역동성을 단순한 거대 계획으로 쌓아올린 다양한 인간들의 삶의 모습과 그 삶의 역동성을 단순한 거대 계획으로 일순간에 정비하려는 것은 도시를 죽이는 일이라고 역설한 제인 제이콥스를 살펴보는 것은 도시재생을 이해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도시재생을 이끄는 길잡이지도로써 창조도시는 주체와 대상, 그리고 가치의 설정이 근간을 이룬다. 누가 재생을 이끄는 가, 재생의 방법은 무엇인가, 재생을 통해 새롭게 창조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가치의 수혜자는 누구인가, 이 일련의 질문을 통해 창조도시를 정의하자면, 창조도시는 도시민 스스로가 도시의 내재적 가치를 재창조하고 그 가치를 사회 모두가 다시 공유할 수 있도록 도시의 전통과 역사, 장소와 삶의 다양성과 정체성을 재정립한 도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창조적 도시재생에서는 시간이 중요하다. 전통과 역사에 담겨진 시간도 중요하고, 자신의 가치를 재발견해내는 시간도 중요하다. 시간에 쫓기다 보면 소통과 사회적 합의가 불가능해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재생의 주체인 도시민이 타자화되고, 재생은 결국 외부적 자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

 도시는 흔히 유기체에 비유된다. 도시가 유기체이지만 그 유기체적 메커니즘은 도시의 물리적 현상보다는 도시를 움직이는 구체적 힘에 의해 좌우된다. 도시가 다양한 삶의 기능들이 얽혀서 시간을 두고 천천히 변화하는 유기적 복합체라면, 도시를 움직이는 힘으로서의 복합의 결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오랜 시간을 두고 장소에 뿌리를 내린 삶, 즉 문화가 그 결정체가 아닐까 싶다. 요즘 도시의 재생을 이끄는 강력한 힘으로 ‘문화’가 작동하는 것이 바로 이런 연유라고 볼 수 있다. 최근 유행하는 ‘컬쳐노믹스(Culturenomics)’는 문화(culture)와 경제(economics)의 합성어로 ‘문호를 통해 고부가 가치를 창출해 도시경쟁력을 높여 경제적 풍요를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이 갖는 문화적 파급효과는 컬쳐노믹스의 상징이다. 영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국가의 지원을 받는 대형문화공간의 무료입장 정책 도입으로 런던의 관광객은 연중무휴 끊이질 않는다. 이처럼 도시재생의 성공사례는 주로 유럽 도시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70년대부터 산업과 물류의 변화로 인해 강을 끼고 제조업이 발달했던 유럽의 도시들은 쇠락한 공장지대를 방치하게 된다. 20년이 넘게 버려진 ‘브라운 필드(Brown Field)’가 재생을 통해 문화예술의 클러스터로 변모하고 있다.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이 자리한 아반도이바라 지역도 브라운 필드였고, 테이트모던 역시 템스강변의 브라운 필드에 위치한 화력발전소였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도시재생은 단순히 노후화돼 버려진 물리적 공간을 재생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도시재생이 경제적 재화로서의 땅의 가치만을 높이는 물리적 재개발과 구분되는 점은 기존의 노후화된 시설과 결합될 수 있는 새로운 가치의 프로그램을 통해 낡고 오래된 장소의 활용 가능성을 살려내고, 이를 바탕으로 주변의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 도시와의 새로운 관계망을 창조해야 한다. 즉 도시재생은 다양한 주체들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의 공존을 통해 보다 더 크게 공유할 수 있는 사회적 커뮤니티를 만들어내야만 한다. 쌍방향 소통이 이뤄져야 한다.

 도시재생이 보편적 삶의 가치와 맞물린 사회적 편견과 고정관념을 해체하고 재조직화해, 소외된 계층과 지역민과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 등 다양한 사회적 가치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소통의 장으로 작용하고, 배타적인 가치의 사회적 공유 가능성을 넓혀 각 사회계층의 정체성과 잠재력을 키워내는 사회적 재생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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