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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飛翔)
비상(飛翔)
  • 경남매일
  • 승인 2018.02.07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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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 종 시인ㆍ독서지도사ㆍ심리상담사

 저수지는 모든 생물체를 빙판의 날개 아래 고요히 껴안고 날만 풀리기를 바라는 걸까. 얼음이 얼마나 두껍게 얼렸나 톡톡 확인하러 건너던 바람이 미끄러지다 말고 냉기를 한꺼번에 쏟아놓는다. 지난 여름 폭우로 떠밀려 내려온 소나무 한 그루가 바위틈에 끼어 아슬아슬하게 하늘을 받치고 서 있다. 뿌리 내리느라 온몸 바르르 떨던 기억으로 누구의 쉼터라도 돼 주고 싶은지도 모른다.

 날아가던 두루미 한 마리 가지 끝에 매달려 앉았다. 소란을 벗고 홀로 앉아 생각에 잠기기에 딱 알맞은 공간이다. 어디가 함정일까, 아니면 배고픔이라도 달랠 수 있을까, 뚫어져라 아래쪽을 내려다보고 있다. 얼어버린 물속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군살 다 빼고 깊은 겨울잠에 들어간 그들의 삶을 들춰보고 싶지는 않아도 가끔씩 입안이 가려울 때 주전부리라도 해보고 싶은 모양이다.

 비탈길 오르내릴 때 눈여겨 보아둔 먹잇감, 보이기만 해도 당장 집어삼켜야 하지만 쉽게 두 발을 내디디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함부로 제 발을 내디뎠다가는 발톱마저 영영 박혀 저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을 잠깐 딴 데로 팔다가는 엄동설한 추위에 꼼짝없이 당하고야 만다고 귀띔해 주던 바람의 소리를 수차례 듣고 있었다. 지금 비록 숨소리조차 죽이고 한곳을 응시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인생의 획을 긋듯 비상을 꿈꾸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 배경에는 언제나 해의 채근이 뒤따른다. 붉은 열정을 껴안은 해는 동산에서 피어올라 중천으로 옮겨가 마침내 서산으로 넘어간다. 날개도 없이 어쩌면 저리도 정확한 위치 이동을 하는지, 궁금하게 바라본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점차 사위가 어두워지면 하늘도 살얼음판인지 희끗희끗 얼음지치기하는 별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뽀송뽀송한 융단으로 둘렀다 하더라도 추위를 타는 건 마찬가지인가 보다. 초저녁 쌀쌀한 기운이 돌아 외투를 껴입다가 그만, 별 모양 단추 하나 눈 깜짝할 사이에 떨어뜨리고 만다.

 앞섶을 여민 단추가 별똥별이라는 것을 알고부터는 어디로 달음박질치나 줍고 싶었다. 주워서 다시 꿰매 주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헤작 벌어진 옷깃으로 찬바람 들어가면 하늘은 추운 날씨를 어떻게 견딜 수 있을는지, 마음 쓰이기 때문이다. 화살보다 더 빠르게 눈동자를 굴리고서는 목젖에 방아를 찧는 사이 금세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다.

 어느 순간, 마음 굳게 닫혀 있는 물비늘을 애살있게 살살 달래는 바람의 심정은 이해가 되지만 온기를 내뿜어 녹이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다. 하기야 한파로 꽁꽁 언 계곡에서 썰매를 즐기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생생하게 떠올라 두 다리 곧추세워 본다. 모든 게 때가 있고 질서가 유지돼야 한다고 외치듯 저 멀리 고속도로에는 차량들이 요란하게 질주하고 있다.

 한때는 잔잔히 흐르는 물비늘 제 몸 들출 때 달의 발길 쫓다가 비상을 꿈꾸던 두루미, 때가 되면 저 높은 곳을 날아오르겠다는 다짐을 하는 걸까. 아무리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처럼 보여도 하늘의 어깨를 비비다 보면 감각이 전달되고 숨소리도 부드럽게 들릴 날이 오겠지.

 두루미는 자신의 길을 미리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삵의 먹이가 되지 않으려면 안전한 곳을 찾아다녀야 하는 것도, 어린 새끼들을 양육해야 하는 것도, 사회적 동물로 활동하며 군락의 어른으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해야 하는 것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묘책이라도 있는 걸까. 일찍부터 좋은 방법을 강구하기엔 육지에 서 있는 것보다 창공이 더 유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게다. 날아오르면서도 생각하고 또 고민하는 것이리라.

 여러 가지 상황들을 유추해 볼 때, 다리나 목이 긴 것도 이 같은 일들을 잘 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부리를 날갯죽지 밑에 집어넣어 어떤 일을 하기 전, 가슴 두근거림과 설렘을 스스로 진단해 보기도 한다.

 늘 다니던 길이 아닌, 새롭고 낯선 궤도를 개척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비록 힘겨워도 여태 몰랐던 부분들을 알게 될 때 느끼는 뿌듯함, 몸으로 직접 느끼면서 공기의 저항력을 터득하는 법도 배우게 된다. 높이, 더 높이 나는 날갯짓은 자신을 뽐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낮고 소외된 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려 몸소 보여주는 행위예술가로 여겨 자긍심을 가질 것이다.

 그러면서도 살아가기 위해 내일은 또다시 벼랑 끝의 가지를 붙든다. 태양 아래서 만물을 고루 비추는 평등을 배울 테고, 비바람 속에서는 강한 인내와 의지력을, 밤하늘 거닐 때는 쿠바의 영웅이었던 체 게바라를 떠올릴 것이다.

 그에 관한 평론집에 나오는 한 부분을 인용해 본다. 대학의 마지막 학기를 마치고 졸업 여행을 떠났다. 모터사이클로 라틴 아메리카를 횡단하다가 춥고 배고픈 신혼부부가 정착할 집이 없어 서로 부둥켜안고 노숙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 계기로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과 혁명을 꿈꾸고 투쟁에 나서게 된 것 같다. 지금도 어두운 곳에서 기거하며 배를 움켜쥔 자들의 고통을 알게 되면 그 생각이 겹쳐진다.

 직접 들춰보고 그곳에도 햇살이 들어가도록 문을 두드려 열어 봐야 한다. 길을 가다가 가끔 낯선 소리가 들려 하늘을 올려다본다. 생사고락을 함께하듯 ‘V’라는 플래카드를 내건 무리들이 떼 지어 날아간다. 두루미의 발돋움이다. 지구 어디서든 멋진 비상을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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