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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You, too)’와 ‘미투(Me, too)’ 사이
‘유투(You, too)’와 ‘미투(Me, too)’ 사이
  • 류한열 편집국장
  • 승인 2018.02.08 20:4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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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의혹에 자유로울
수 없다”는 ‘유투’나
“나도 희생자다”라는
‘미투’ 사이에서
우리 사회는
‘가면’을 벗어야 한다.
▲ 류한열 편집국장

 8일 오전 10시 양산시청 프레스센터. 민주당 양산시의회 의원 7명이 기자들 앞에 섰다. 나동연 양산시장이 업무 추진비 일부를 ‘카드깡’을 해 편법으로 지출했다는 의혹을 폭로했다. 이 의혹은 더불어민주당 양산시장 출마를 선언한 강태현 변호사가 지난 6일 주장한 내용이다. 나 시장은 최근 자유한국당 양산 을 당협위원장에 선출돼 6ㆍ13 지방선거에 힘을 받는 듯했지만 민주당에서 시장직 사퇴 압력까지 받는 처지가 됐다. 민주당 시의원이나 민주당 양산시 출마예상자 주장의 진실은 뒤로 밀쳐놓고 지방선거를 4개월 남겨둔 와중에 의혹을 폭로하는 행위는 어찌보면 ‘유투(You, too)’의 연장 선상에 있다. “너도 비리에 자유로울 수 없다”, “너도 마찬가지다”라는 작전이 가장 필요한 시점에서 그대로 활용되고 있다. 시의원으로서 행정사무감사를 소홀히 한 책임을 덮어쓰더라도 상대 당 시장을 흔드는 것을 보면뒤끝이 씁쓸할 수밖에 없다. 한 번 더 이야기를 덧붙이면 의혹과 별개로 하는 말이다. 아무리 정의를 내세워도 정의의 색깔이 칙칙하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오래전부터 양산지역 정가에는 밑도 끝도 없는 소문이 나돌았다. “야당 시장이 삼선으로 가는 길이 쉽지 않다”, “여당이 가만 놔두겠나”, 심지어 “임기도 못 채울 수 있다”라는 말까지 떠돌았다. 그 당시 반신반의하던 사람들은 이제야 “아하”하고 무릎을 친다. 의혹은 밝혀야 하고 탈법과 불법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하지만 ‘유투’를 갖다 대면 웬만한 사람은 나가떨어진다는 말이 틀리지 않다는데 놀랍다. ‘주머니 털어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없다’는 말로 두둔할 생각은 없지만 어느 누구도 주머니 털자고 덤벼드는 사람에게 주머니를 갖다 대지 못한다. 청백리로 잘 알려진 황희 정승도 한때 뇌물을 밝혀 ‘황금대사헌(黃金大司憲)’이라 불렸다. 요즘에 이런 비난을 받았다면 정승 문턱에도 못 가서 주저앉았을 것이다. 재차 이야기하지만 누굴 두둔할 생각은 없다. ‘유투 덫’에 걸리면 타격을 입고 정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해서 핏대를 세울 뿐이다.

 처음 영어를 배울 때, 상대 말을 동의하면서 “미투(Me, too)”라고 소리쳤다. 미투는 영어 초보자가 자주 쓴다. 영어를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미투”라고 하면 대부분 맞기 때문이다. 짓궂은 아이는 “미쓰리(Me, three)” 또 옆 아이는 “미포(Me, four)”라고 했다. 진짜 몰라서 “쓰리, 포” 하면서 동의하기도 했다. 요즘 미투(Me Too) 운동이 물결치고 있다. 나도 그런 일을 당했다는 고백이다. 미국 거물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이 오랫동안 할리우드 배우를 성추행한 나쁜 행동이 드러나는데 미투가 큰 역할을 했다. 세계적인 스타인 안젤리나 졸리와 기네스 펠트로도 희생자의 명단에 올랐다. 아카데미상을 주관하는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는 와인스틴의 회원 자격을 박탈했다. 그가 그 세계에서 퇴출된 건 당연한 일이다. ‘미투’ 운동은 정치ㆍ사회ㆍ체육계로 확산하고 있다. 미국 연방 상원의원도 미투에 찬 서리를 맞았다. 더 놀라운 일은 미국 체조 국가대표 선수팀 주치의였던 래리 나사르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비롯한 선수 156명을 성폭행하거나 추행했다. 래니 나사르는 감옥에서 대략 235년을 살게 됐다. 그는 오랜기간 나쁜 짓을 못 하니 그 세월은 영원보다 더 긴 것처럼 느낄지 모른다.

 서지현 검사가 우리나라에 몰고 온 미투 열풍은 가히 초특급이다. 검찰 조직은 물론이고 사회 전체까지 들었다 놓을 태세다. 현직 여 검사의 성추행 폭로는 참 대담하다. 미투가 미쓰리, 미포로 이어지면서 우리 사회에서 어물쩍 넘어갔던 성 관련 추한 행동이 이번에 꼬리를 감춰야 한다. 우월적 지위에서 누렸던 몹쓸 남자들이 고해성사를 하고 손 조심을 해야 한다. 행여 서 검사의 놀라운 행동이 두터운 인습의 벽에 부닥쳐 이상한 변명으로 돌아오는 걸 경계해야 한다.

 유투든 미투든 타이밍이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상대 주머니의 먼지를 털려고 덤벼들 때 “왜 하필 지금인가”라는 질문에 답이 궁색할 수 있다. 서 검사가 지난 2010년 10~12월경에 성추행을 당했다고 했는데 왜 지금 와서 폭로를 했는지 궁금할 수도 있다. 검찰 조직 안에서 이 문제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면서 세월을 까먹었을 수도 있고 뭉그적거리고 덮으려 했는데 결국 터진 꼴이 됐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오랜 세월이 지나 “왜 하필 지금인가”에 명쾌한 답을 찾을 수 없다.

 “너도 의혹에 자유로울 수 없다”는 ‘유투’나 “나도 희생자다”라는 ‘미투’ 사이에서 우리 사회는 ‘가면’을 벗어야 한다. 유투나 미투가 우리 사회에 엄습한 기운을 몰아내는 힘을 발휘해야지 상대를 단번에 제압하는 힘이 되면 곤란하다. 앞으로 이쪽에선 “유쓰리”, “유포”…, 저쪽에선 “미쓰리”, “미포”…가 터져 나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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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조 2018-02-26 23:30:48
사회적 약자에 대한 권력자의 액션은 폭력이죠.
폭력은 범법행위니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하는것으로 귀결되야죠.
검사, 판사, 시인, 배우, 교수, 연예인 심지어 일반인, 그누구도 절대 예외조항은 없어야되죠. 그런면에서 법이 내리는 방망이의 수준을 지켜봅니다. 솜방망인지, 쇠방망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