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08:14 (목)
권력에 취해 부패의 잔을 들다
권력에 취해 부패의 잔을 들다
  • 류한열 편집국장
  • 승인 2018.02.22 2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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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한열 편집국장

 

 

 

 

 

 

 

인생에 가장 소담스러운

내용을 담는 기술은

마지막을 아름답게

꾸미는 일로

귀착한다.

 성폭력에 ‘미투(나도 당했다)’가 붙어 전설이 무너지고 있다. 그들만의 왕국에서 추한 몰골을 드러내면서 사람 속살마다 환멸이 어른거린다. 지금 문화계가 휘청인다. 성폭력 피해 사례가 무대에 끊임없이 올라온다. 고운 시로 시심을 울렸던 고은 시인이 뱉어냈던 몹쓸 언어유희가 사방에 울린다. 무대에 작품을 올려 관객을 울리고 웃겼던 이윤택 연극연출가가 놀렸던 손 행위가 어지럽다. 잘 생긴 배우 조민기 씨가 배우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했던 행위는 드라마보다 더 자극적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상대의 속살이 드러나면 희한한 자극을 받는다. 그런데 미투로 드러나는 속살은 생선 비린내보다 더 역겹다.

 사람은 권력에 취하면 반드시 부패의 잔을 마신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며 문화계 권력자가 휘두른 칼에 많은 꽃잎이 떨어졌다. 아스라한 기억을 비집고 토해 놓은 성추행 고발은 문화계 전반에 오물처럼 붙었다. 아스라한 기억이 아니다. 뇌리에 또렷이 박혔을 기억이다. 차마 그 아픔을 누가 떨칠 수 있을까. 그래서 추행리스트가 블랙리스트보다 더 고약하다. 다행이다. 추행리스트가 드러나 더러운 권력자의 면면을 보는 건 다행이다. 자신의 아픔을 폭로하는 행위는 거룩하다. ‘폭로가 정의를 만들었다’고 하면 너무 멀리 가는 말일까? 사람은 전설을 믿을 때 풍요로운 삶을 산다. 사람은 전설을 만들고 또 다른 사람은 그 전설을 듣고 살 만한 세상을 꿈꾼다. 전설이 없으면 이 세상은 휑뎅그렁하다. 지금 문화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전설이 허물어지고 있다. 시 구절을 실타래 풀듯 수만 번 원고지에 채워 넣은 노 작가가 ‘검은 실’을 뽑아내는 마력까지 갖춰 인간의 양면성을 그대로 보여줬다. 인간의 입에서 찬양과 저주가 동시에 나오는 꼴이다. 샘물에서 단물과 쓴물이 함께 솟아 오르는 모양새다. 이런 대범한 짓을 전설을 두르고 있는 사람이 하고 있다. 권력이 만든 나쁜 짓거리다.

 미투에 무너지는 그들의 왕국을 보면서 삶을 돌아보는 작은 행위를 왜 소홀히 했는지 궁금하다. 사람은 자신의 행위를 자주 잣대에 대봐야 한다. 그 행위가 흑과 백 쪽 어디에 있는지를. 지금 인생의 전반부에 꽤 모양을 갖춰 산 사람들이 중ㆍ후반기에 추락하는 모양을 보면 뒷맛이 씁쓸하다. 끝이 아름다워야 그 과정까지 아름답게 품을 수 있다. 미투 운동이 우리 사회에 몰고 온 화두는 ‘끝이 아름다워야 한다’로 새겨질 수 있다. 끝에 끝없이 추락하는 그들을 보면서 삶의 과정까지 통째로 진공상태가 돼 안타깝다. 삶을 순간순간 돌아보고 그 퍼즐을 맞춰 전체 그림으로 완성한다는 진리가 새삼 도탑게 들린다.

 마크 맨슨이 쓴 ‘신경 끄기의 기술’이 요즘 잘 팔린다. 인생에서 제일 소중한 것만 남기는 힘을 길러준다는데 인기가 없을 리 없다. 다른 책에서 내놓은 ‘생각의 골’을 뒤집어 기술하면 독자는 신선하게 받아들인다. “절대 긍정은 외려 독이 된다”, “무조건 믿고 노력한다고 인생이 특별해지거나 행복해지지 않는다” 등 이런 글의 구절을 읽으면 솔깃하다. 신경을 꺼야 인생의 중요한 것을 본다고 책장마다 친절하게 일러준다. 인생에서 최고 기술인 미투 운동 덫에 걸리지 말 것을 경고하지 않은 게 아쉽다.

 인생에 가장 소담스러운 내용을 담는 기술은 마지막을 아름답게 꾸미는 일로 귀착한다. 전 세계인이 미투 운동을 보면서 깨닫는 내용이다. 미투가 퍼져나가는데 가해자로 이름을 올리면 삶은 가차 없이 부서져 내린다. 미투 운동은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평생 쓴 아름다운 시 구절마다 악취가 나는데 얼마나 애통할까. 그래서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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