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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 조선과 단테의 ‘신곡’
헬 조선과 단테의 ‘신곡’
  • 이광수
  • 승인 2018.02.27 2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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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 소설가

 헬 조선은 지옥을 뜻하는 헬(hell)과 조선의 합성어이다. N포세대로 내몰린 한국의 청년세대들이 내뱉는 자조적인 표현이다. 한 언론사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 20대의 90.7%, 30대의 90.6%가 자신이 사는 한국이 헬 조선이라는 사실에 공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이 땅을 지옥 같다고 생각하는 젊은 세대는 한국을 금수저와 흙수저로 양분된 정의롭지 못한 사회라고 꼬집고 있다.

 문학에서 지옥이라고 하면 단테의 신곡을 먼저 떠올린다. 명작의 반열에 오른 학창시절 필독서이기 때문이다. 알리기에리 단테는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피렌체의 최고지위까지 올랐다. 그러나 부재중 정변이 일어나 추방되는 신세가 돼 이탈리아를 유랑하며 떠돌다 쓸쓸히 세상을 떠난 당대 최고의 시인이었다. 유랑생활 중 쓴 신곡은 로마시대의 위대한 서사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로 지옥과 천국을 여행하는 내용의 중세시대 최고의 대서사시이다. 단테의 초년은 순탄한 삶이 아니었다. 몰락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사모하는 처녀 베아트리체와의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그리고 그 연모의 여인은 24살의 꽃다운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비록 남의 여인이 된 사람이었지만 사랑했던 여인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좌절ㆍ절망한다. 슬픔에 빠진 단테는 청춘의 고뇌와 사랑의 찬미를 그린 시집 ‘새로운 인생’을 출간했다. 그 후 입신의 기회를 잡은 단테는 피렌체의 정치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해 숙고하는 삶에서 행동하는 삶으로 인생 항로를 바꾼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정변으로 귀향하지 못한 채 세상을 유랑하며 주린 배를 채우기에 급급한 지옥과도 같은 삶을 이어간다. 말년에 한 귀족의 후원으로 라벤나에 안착해 긴 유랑생활의 종지부를 찍는다.

 신곡의 첫 번째 장을 여는 글에서 “내 인생의 최전성기에 문득 길을 잃고 뒤를 돌아다보니 숲속에서 길을 잃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인생의 정점에서 나락의 끝으로 곤두박질친 단테 자신의 지난 삶을 신곡에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단테는 권력의지와 재물에 대한 탐욕 때문에 인생의 길을 잃고 광야를 헤맨 것이다. 아무런 도움도 구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 단테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네가 이 숲을 벗어나려면 다른 길을 가야 한다. 지옥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인생의 방향을 돌려야 한다”는 베르길리우스의 충고와 안내에 따른다. 그리고 지옥과 연옥을 거쳐 천국과 마주한 단테는 “여기 한숨과 울부짖음과 드높은 통곡이 별 없는 하늘에 울려 퍼지기에 나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별은 희망의 상징이다. 별이 없는 세상은 헬 조선이다. 신곡의 주제는 바로 희망을 잃지 않고 별을 따라가면 지옥에서 벗어나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도 연모했던 여인 베아트리체를 만난다. 그녀가 살고 있는 천국은 희망으로 가득한 낙원이다. “나의 혀를 한껏 힘 있게 하시어 당신의 영광의 불티를 단 하나만이라도 미래의 사람들에게 남겨주게 하소서”라는 말로 단테의 신곡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통찰: 단테가 그린 천국과 지옥에서).

 왜 우리는 지금 단테의 신곡을 얘기해야 하는가. 헬 조선은 단테가 경험한 세상에 상상을 더해 쓴 신곡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갈수록 커지고 있는 빈부격차, 세계 최저의 출산율, 세계 1위의 자살률,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 청년 실업률, 세계 10위권에 진입한 가계부채 1천450조, 점증하는 남남갈등의 증폭 등 우리를 고통스럽게 짓누르는 악재들은 새로운 해법과 대안을 요구하고 있다. 단테의 신곡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자못 의미심장하다. 헬 조선은 어느 누구 한 사람의 탓도 아니다. 5천만 국민 모두가 이기심과 물욕과 권력욕에 사로잡혀 삶의 방향을 잃고 헤맨 결과 생겨난 사생아이다.

 엊그제 평창 동계올림픽이 성공리에 마무리됐다. 세계인의 축제로, 남북화해의 상징적인 체육행사로 기록됐다. 세계인 모두가 최고의 대회였다고 박수를 쳤다. 그러나 눈을 안으로 돌리면 두 편으로 갈라진 민심의 골은 더욱 깊어만 간다. 천국으로 가는 길이 보이는데 왜 우리는 굳이 지옥의 길로 가겠다고 억지를 부리는지 모르겠다. 단테가 자신의 삶에서 뼈저리게 겪었던 것을 신곡에서 보여줬듯이 정상에 오르는 순간 지옥의 나락이 아가리를 벌리며 기다리고 있다. 네 탓 내 탓 하는 사이 국론은 사분오열되고 헬 조선에 절망한 청년들은 기성세대에 신물이 나 인맥 거지를 자처하며 은둔자로 변한다. 글로벌 모바일 참여지수 세계 1위의 정보화 강국이 정치의식은 대원군 시대에 머물고 있으니 아이러니컬하다. 헬 조선 대한민국, 아집과 독선의 미망에서 깨어나 융합과 통섭의 통찰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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