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22:36 (금)
가야의 혼 흙 속에 담아
가야의 혼 흙 속에 담아
  • 어태희 기자
  • 승인 2018.03.14 2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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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파선의 후예들 (1)김정남 작가

`자신`을 모티브로 삼아

투박하고 개성있는 도예

미래 `도자기 공원` 꿈 꿔

<조선 사기장 960명을 이끌고 아리타의 히에고바에 가마를 열었다는 `불의 여신` 백파선.
  그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옛 가야, 김해에는 여성의 몸으로 불과 싸우며 사랑하며 도자를 굽는 그의 후손들이 있다. 기획 `백파선의 후예들`에서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진다.>
 

▲ 지난해 김해문화의전당 `New Facd & Artist in Gimhae`전에 전시됐던 김정남 작가의 작품 `너를 만나다`.

 `어느 날 내린 비를 맞으며 울고 있던 소녀가 있다. 비인지 눈물인지 모를 만큼 울고 있다. 긴 코를 가진 작은 아이너는 코끼리처럼 보였으나 희미하다. 자세히 드려다 보려하니 소녀는 어느 덧 눈물이 흐르지 않는다. 나를 본다. 그 아이가… 내 위로 떨어지는 비를 긴 코로 빨아 당긴다.`(김정남 작가노트 中)

 김해의 여성 도예가, 김정남 작가가 손으로 빚어낸 작은 코끼리는 그에게 위안을 줬다. 낙담과 고통, 슬픔이 오롯이 뭉쳐 내리는 비를 코끼리가 받아내고 빨아들인다. 그가 한참 우울증에 빠져 있을 때 꿈에 나왔던 코끼리는 이렇게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우울증을 벗어나게 해준 지금의 남편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상아빛 둥근 몸체를 가진 작은 코끼리는 고개를 쳐들고 코를 하늘로 뻗어 올렸다. 코끼리는 귀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 할 듯 하다. `마음껏 울어도 돼, 내가 있으니까.`

▲ 김정남 작가의 작품 `엄마를 그리다`.

 김 작가는 자신의 감정표현에 솔직하다. 자칫 타인에게 속을 들킬까봐 움츠려들지 않는다. `우울했다`, `슬펐다` 혹은 `즐거웠다`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는 얘기한다. 이런 감정들을 고스란히 작품 속에 담아내기 때문일까. 김 작가는 호탕하고 밝은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다.

 "작품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이라고 생각해요. 내 손에서 탄생하는 거니까 다른 무엇보다 내 생각과 감정이 가장 중요하죠. 또 이런 일상 속에 담긴 감정의 변화가 다른 이들에게 가장 공감 받을 수 있는 주제이기도 하겠죠."

 어린 날 일찍 어머니를 여윈 아픔은 `엄마를 그리다`라는 작품으로 표출됐다. 5남매들의 면면이 조용히 슬픔을 얘기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 감정에는 포장된 것이 하나 없다.

 "아픔을 계속해서 직면하는 것, 그것을 통해 치유가 됐다곤 말 할 순 없지만 `그땐 아팠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 됐죠."

 예술은 그에게 슬픔을, 위로를, 기쁨과 사랑을 선물한다. 주로 흙을 구우며 설치미술을 하는 김 작가이지만 캔버스 앞에서 붓을 들기도 한다. 종이에 그림을 그리던 그의 어린시절과 같이 말이다. 예술가를 꿈꿨던 어린 시절의 그는 사실 당시 지금처럼 도자기를 굽는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공예학과는 사실 `안전빵`(여러 경우의 수 중 가장 객관적으로 안전한 목표)으로 들어간 거죠."

 김 작가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20살 때 공예학과를 들어가서 3학년 때 도자를 전공하게 됐죠. 근데 하면서 느꼈어요. 정말 이게 내 길이구나."

▲ 김정남 작가.

 김 작가는 도자 예술의 유동성을 좋아한다. 굽기 전까지는 얼마든지 형태를 바꿀 수 있는 점이 다른 설치미술과는 다른 장점이다. 가마에 열고 그 문을 열기까지 느끼는 팽팽한 긴장감도 그가 도자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는 오래된 도자의 기법을 모방해 다른 새로운 것을 만드는 작업을 목표로 한다.

 우연찮은 `안전빵`으로 도자를 시작하게 된 김 작가는 자신의 일에 나름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제 작품엔 촌사람의 특색이 담겨 있어요. 도시 사람의 세련됨은 없지만 투박하고 또 흥미롭죠."

 과연 그의 말 대로 김해 한림 시골의 토박이인 김 작가의 작품에는 톡톡 튀는 매력이 있다. 지난해 결혼을 앞두고 남편의 허락을 받고 뛰어 들어갔던 나이트클럽의 기억은 `Virgin party`로 `아줌마가 되기 전`의 김 작가가 어색한 표정으로 눈치를 보는 작품이 됐다. 어느 날 나른하게 땡볕에 누워있던 평화로운 고양이의 모습은 `우리가 사실 고양이 세계에 온 게 아닐까`라는 생각과 함께 그가 만드는 모든 그릇에 들어가는 포인트가 됐다.

 또 다른 `흥미 넘치는` 작품의 창작을 고민하는 그의 표정에는 설렘과 행복이 가득하다. 새신부인 지금 그의 일상은 무엇보다 행복하다. 무엇을 만들어도 행복한 작품이 나올 것 같다는 기대감을 뽐냈다. 거창치 않게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묻자 김 작가는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고 답을 내놓은 그는 곧 이어 손뼉을 치며 다시 말을 잇는다.

 "아, 사실 정말 미래의 목표이지만 산을 하나 사서 남편과 함께 도자기 공원을 꾸미고 싶어요. 내 작품들을 밖에서 연출해 놓고 싶죠. 그곳에서 살면서 방문객들을 맞이하면 더 없이 즐거울 것 같네요."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돈을 엄청 많이 벌어야 되지 않겠나"라고 김 작가는 웃으며 말을 끝맺었다. 누구보다 감정에 솔직한 그의 작품들이 자연과 함께 노니는 모습. 언제가 될지 모를 도자기 공원의 완성이 기대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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