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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재편집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든다
장소 재편집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든다
  • 이덕진
  • 승인 2018.03.22 2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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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진 문화학박사 동의과학대 교양 교수

 인간은 약하다. 그래서 괴로운 길을 걷는 중에 최종 목표를 상상하는 버릇이 있다. 길이 길면 길수록 괴로우면 괴로울수록 인간은 미래의 꿈을 꾸고 매달린다. 꿈은 하나의 완성된 이미지다. 미래에 대한 꿈은 유토피아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사람들은 유토피아를 향해 매진했다. 그간 그려진 유토피아의 모습은 다양하다. 건축이든 도시든 국토든 모든 계획은 유토피아의 축소모델이다. 그러나 현실은 항상 유토피아를 가차 없이 배신하고 그때마다 인간을 실망 시켰다.

 20세기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공간점유를 향한 끝없는 욕망이 충만한 시대라 할 수 있다. 도시재생이라는 명목 하에 비 온 후의 버섯처럼 무절제하게 올라서는 초고층빌딩, 병들어가는 지방 도시나 농촌 지역, 글로벌화가 불러일으키는 끊임없는 국제분쟁, 그 문제점들의 근원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근대적인 사고와 그 결과로 생겨난 물질주의가 명백히 드러나 있다. 이러한 구조의 근본적인 내면에는 공간점유를 향한 끝없는 욕망이 숨겨져 있다. 어떻게 해야 이 욕망을 극복할 수 있는지가 21세기 문명의 최대 과제다. 적어도 노후한 마을이나 도시의 급성장기에 주먹구구식으로 급히 만들어진 주거지를 그대로 버려둔 채 자동차 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교외로 달아나거나, 공중에 떠 있는 듯이 생활하는 고층빌딩으로 도망치는 등 기존의 마을과 따로 분리된 형태로는 지속가능한 도시 공간을 실현할 수 없다. 자동차에 의존해야 하는 교외 생활이나 발이 땅에 닿을 일 없는 고층빌딩 생활보다 훨씬 매력 있는 거리를 재생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도시 공간에 이르는 첫걸음이다. 아울러 현존하는 거리 재생은 단순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갖고 다양한 행동을 전략적으로 투입하고 전개해 서서히 거리공간의 체질을 개선해 나가야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기존의 거리를 전부 부수고 빈 택지를 만들어 새로운 단지를 세우는 스크랩 앤드 빌드(Scrap and Build)형 재개발은 교외의 신개발단지나 고층빌딩에서는 찾을 수 없는, 기존 거리가 지닌 본연의 매력을 끌어낼 수 없다. 물론 교외의 녹지나 농지를 파괴하지 않고 교통, 쇼핑, 의료 등 편의시설이 밀집된 장소에 주택, 상업, 오피스, 호텔 등 여러 용도를 복합해 잘 정돈된 오픈 페이스를 조성하는 고밀도혼합용도 재개발단지 또한 그 나름대로 기능적으로 쾌적하고 에너지도 절약되는 데다 친환경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양한 시민의 생활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해서 많은 사람은 떠난다. 보통의 거리란 다양한 존재와 요소가 다원적인 원리 하에서 어떤 면에서는 대립하고 또 다른 면에서는 상생하면서 그 나름대로 관계성을 유지하며 공존하는 공간이다. 한 요소를 바꾸면 남은 요소에 그 영향이 미친다. 거리 공간의 다양한 요소 간 관계를 결정적으로 무너뜨리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적절한 요소를 차례대로 전략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리고 그 파급효과를 끝까지 지켜보면서 다음 조치를 취해야 한다.

 도시의 재생이란 사람의 몸에 있는 경혈을 차례대로 눌러서 전신의 균형을 되찾게 하는 것과 같이 지속적인 작업이다. 이러한 의미로 지속가능한 도시 디자인이란, 지속가능한 도시 공간을 재생하기 위한 요소가 되는 장소와 장소의 선택방법을 포함한 종합적인 디자인 기법이며, 동시에 이러한 일련의 도시 디자인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는 뜻도 담고 있다. 도시 공간은 다양한 장소로 구성돼 있어서 각 장소의 성쇠나 개조, 변경은 기압이 끊임없이 변하는 기상도처럼 도시 내의 세력 지도를 바꾼다. 인파의 흐름을 크게 바꾸는 현대건축과 공공 공간, 외면당했던 공간을 다시 이어주는 운하의 리노베이션 등 도시재생에 효과를 부여하는 프로젝트는 기존 공간에 새로운 세력분포도를 나타내 보임으로써 각 장소에 새로운 의미와 관계성을 부여하는 시도이자 지극히 편집적인 행위이다.

 도시재생은 보통 부분적이고 단계적으로 진행된다. 그 경우 하나의 계획이 불러올 효과를 주위 문맥을 통해 추측하고 그 효과를 이어가고자 하는 대응적이고 문맥 형성적인 디자인이야말로 공간적인 상승효과를 얻을 수 있는 열쇠다. 또한 정리된 면(面)적인 개발을 도심에서 시행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건축이나 광장을 신축하거나 리노베이션하는 ‘점(点)’적인 개발과 보행자 공간을 도입하는 운하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선(線)’적인 개발이 필요하다. ‘점’과 ‘선’적인 요소에 의해 기존 공간을 단계적으로 재편하면서 역사가 있는 도심에 새로운 기능과 활기를 부여해야 한다. 미술관과 공연장을 ‘점’적 요소로 삼아 문화도시 구상의 전략거점으로 만든 영국의 뉴캐슬, 보행자 공간이라는 ‘선’적 요소를 역사 지구에 끌어들여 현대 시민사회를 구현하는 공공 공간을 탄생시킨 코펜하겐처럼 도심의 공간적 재생과 문화적ㆍ사회적 재생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따라서 도시는 시민사회나 역사처럼 보다 넓은 문맥을 재편집하는 시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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