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2:26 (토)
4월, 숲의 소리
4월, 숲의 소리
  • 은 종
  • 승인 2018.04.09 2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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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 종 시인ㆍ독서지도사ㆍ심리상담

 회색 천으로 걸쳐놓은 듯, 구름은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어제 내린 비의 양으로는 부족했는지 지구 한 모퉁이에서 비는 계속 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언뜻 내비치는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아기자기한 풀잎들이 향기를 모아 전해주고, 풀 내음 가득 이는 공원에는 인적이 드물어 한쪽 귀퉁이 언덕에서 흘러내려온 도랑물에 개구리 알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었다. 이미 올챙이로 부화해 서로 엉켜있는 모습도 장난기 가득해 보였다. 야산을 타며 산책하는 인적 소리에 둘러보니 봄 동산에 올라 와 마음의 휴식을 찾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4월은 생명의 환희를 활짝 열듯 꽃들도 만개했다. 어느새 비와 바람으로 찬란함이 지고 난 자리에 새잎이 돋아나 시원한 여름을 예고해주니 희망적이다. 꽃나무에 꽃이 피고 지는 것, 그리고 다시 새잎이 돋아나 그늘을 만들어줄 것이라는 즐거운 상상을 하니 자연 앞에서는 뭐든 미소를 짓게 되는 것 같다.

 이렇듯 어떤 결과를 유추해 내기보다 있는 그대로 자연을 마주하면서 생각과 정리가 필요한 일이 있을 때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한다. 자신을 헤아리고 싶을 때, 뒤돌아보고 싶을 때, 자연의 힘을 빌리고 싶은 것이다. 거기에는 집어등(集魚燈)과 같은 현란함이나 치명적인 화려함은 없다. 유혹에 빠질 염려도 없고 마음을 산만하게 하는 휘황한 불빛도 없는 것이다. 그냥 편안함, 고요 가운데 이는 마음을 던져 놓을 뿐이다. 숲의 성인 헨리 소로우가 걸어갔던 인생길도 이와 같았으리라. 자연의 섭리에 따라 소박한 삶을 사는 것, 몸을 혹사하지 않으면서도 생생한 자연과의 접촉을 즐기는 것, 그것이 삶을 맑고 건강하게 사는 비결이라 생각해 본다.

 깊은 계곡에서 흐르는 웅덩이에는 자연 친화적인 엘피판도 만날 수 있다. 물이 괸 웅덩이에 떨어진 이파리 하나가 재생용 바늘이 돼 계속 돌고 도는 장면을 바라보면 마치 녹음된 숲의 소리가 전해지는 것 같다. 그 음악 소리는 너무나 맑아서 구름도 긴 발을 담근 채 듣고 있고 바람도 그 주위를 맴돌며 떠나질 않는다. 가끔 새들이 소리를 증폭해서 퍼다 나르면 고요했던 산에는 유성기가 따로 없다. 두 손 벌려 화답하는 나무들, 그 사이로 쏟아지는 봄볕, 아득한 우듬지에 새순이 돋아 온 산이 축복 송을 부르는 듯하다.

 하지만 자연이 내밀어 주는 선물에 묵묵부답인 도심은 어떠한가. 모든 것이 스펙터클화 돼가므로 시각에만 길들어져, 촉각을 일깨워주는 감각을 상실해가고 있다. 흙을 만지며 노동하고 재생산하던 시대는 추억 속에만 존재할 뿐, 현장에서는 찾기 힘들어졌다. 마치 대중매체 안의 거대한 구조가 현실 세계인 양, 무감각한 상태로 만들어버려 거기에 도취하는 사람들로 변해가고 있다. 시대의 흐름과 결별할 수는 없어도 그것들을 다스릴 수는 있어야 하니, 자연과 자주 접촉하고 생기를 얻고 호흡을 하다 보면 지배하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며칠째 황사와 미세먼지로 주위가 몸살을 앓고 있었는데 이 고요한 숲에서는 신생의 풋풋함이 돋아나 생기를 더해가고 있었다. 내려오는 길, 계곡물이 발걸음에 보조를 맞추듯 졸졸, 봄의 가락을 연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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