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06:25 (금)
오늘은 가해자 내일은 피해자
오늘은 가해자 내일은 피해자
  • 김병기
  • 승인 2018.04.11 22: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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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기 김해중부경찰서 연지지구대장 경감

 날씨만큼이나 시절도 오락가락하다 보니 벌써 4월 중순에 접어들었다. 돌이켜보면 해놓은 일은 하나도 없는데 시간만 허송세월 보낸 것 같아 답답하다. 며칠 전만 해도 가로수로 단장한 벚꽃나무가 화사한 봄기운을 뽐내더니만 매서운 북풍 바람에 꽃비를 뿌렸다. 아침 출근길 거북공원에는 하얀 눈이 수북이 쌓여 바람에 날린다. 가만히 보니 꽃비 돼 떨어진 벚꽃나무의 꽃들이다. 요리조리 꽃들의 향연을 즐기며 자전거 페달 밟는 걸음이 한결 가볍다. 밤늦게 취객들을 맞이한 가게들은 조용한데 반려견 목줄을 잡고 나온 아주머니는 연신 줄을 낚아챈다.

 지구대에 이르러 순찰차를 찾았다. 나란히 정렬되지 못하고 각지게 주차를 해놓은 것은 사건이 있다는 표시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간밤을 뜬 눈으로 보낸 동료들과 교통사고로 방문한 민원인들이다. 확실하게 교통사고를 내지 않고 어중간하게 낸 이들인가 보다. 교통사망사고를 확실하게 내는 10가지 방법을 아직도 터득하지 못한 것 같다. 미리 알았더라면 오늘은 가해자가 돼 이렇게 탈 많고 변덕 많은 세상을 일찍 하직하고 천상에 먼저 갈 수 있었을 것인데 아쉽다.

 운전자가 교통사망사고를 확실하게 내는 10가지 중 첫째, 출발 전 차량점검은 절대로 하지 않아야 하고 둘째, 출발부터 조급한 마음으로 과속을 해야 한다. 셋째, 전 좌석 안전벨트는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하고 넷째, 반드시 전방 주시를 태만히 하고 과속해야 한다. 다섯째, 앞차와의 간격은 최대한 가까이해야 하고 여섯째, 끼어드는 차량에는 절대로 양보치 말아야 한다. 일곱 번째, 급할 땐 무조건 신호를 위반해야 하고 여덟 번째, 피곤한 상태에서 운전은 가급적 오래해야 한다. 아홉 번째, 한 손으로 운전하고 휴대폰은 장시간 통화해야 하고 열 번째, 운전 중에는 동승자와 잡담에 푹 빠져야 한다. 여기에 덤으로 혈액순환을 위한 술도 곁들여야 효과가 상승한다.

 베이비붐세대로 콩나물시루 같이 서로 엉겨 자란 세대라면 일등을 놓친 인생들이 대다수일 것인데 이승에서 천상에 오르는 길만큼은 양보 없이 먼저가서 일등을 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운전자는 10가지 방법을 사전에 숙지하고 낮술도 마다치 않는다면 그 소원은 이뤄질 것으로 믿는다. 밤 11시, 김해 내외중앙로 편도 2차로 중 1차로는 주차 차량으로 엉겨있고 2차로에 어깨 맞잡은 취객들이 택시잡기에 나선다. 코스와 손님 상태를 보아가며 낙점하는 택시기사들 눈매가 제법인데 신호쯤은 무시하고 윙윙 거리며 치달리는 배달 오토바이도 가관이다.

 여기라면 10가지를 몰라도 확실히 교통사망사고를 낼 수 있는 곳이다. 술을 좀 더 먹고 택시가 오건 말건 차도를 인도 삼아 콧노래도 부르며 오토바이를 맞으면 된다. 약국 골목 후미진 곳에는 등을 두드리며 토사물을 남기는 청춘들이다. 배고픈 비둘기가 가여워서 먹이를 남긴다고 고생이다. 그래, 오늘만큼은 가해자가 확실히 피해자가 되는 술래 흉내다. 이웃 나라 일본은 캥거루족 자녀들이 생을 마감하는 부모를 따라가는 일이 빈번하다 한다. 혹자는 교육이 잘못됐다 하고 어떤 이는 부모들이 아이를 잘못되게 했다 한다. 누구 말이 맞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 무언가 잘못됨은 사실이다. 그래도 꽃비 돼 떨어진 벚꽃나무 잎사귀의 무성한 싱그러움을 지켜보며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는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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