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8:23 (금)
미투 바람 더 세게 불어야 한다
미투 바람 더 세게 불어야 한다
  • 류한열 논설위원장
  • 승인 2018.04.26 19: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투 바람이 기업 총수
일가에게 가면
‘갑질 미투’가 되고
학교 쪽으로 방향을
틀면 ‘스쿨 미투’가
되고 의료계로 가면
‘의료 미투’ 된다
▲ 류한열 논설위원장

 ‘#미투 그물’에 걸려 낭패를 보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미투 폭로에 이름이 오르면 지금까지 잘 만들어 온 인생 노트에 빨간 줄이 그인다. 매일 신문에 오르는 미투 희생자를 보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어 좋지만 씁쓸한 심정을 억누르기도 쉽지 않다. “나도 당했다”는 미투는 인간 존재의 선언이다. 자신의 마음속에 새겨진 상처를 드러내는 용기 있는 행동이다. 간혹 미투를 악용해 상대를 거꾸러뜨리는 희한한 일도 벌어지지만 이런 묘한 부작용을 겪더라도 미투는 새싹처럼 계속 솟아나야 한다.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한테서 몸과 마음에 입은 상처는 치유돼야 한다. 미투 과정을 통해서.

 성추행 의혹을 받아 온 창원대 무용학과 교수가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이 교수는 수업시간에 일부 학생에게 여성의 민감한 부위를 반복적으로 만졌다고 한다. 또한 그 부위를 찔러서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 피해를 받은 학생은 해당 교수의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여러 학생들이 수치심을 느낄 정도인데 이 교수는 무용 지도를 할 때 신체 접촉은 불가피하다는 취지로 진술하면서 범행을 부인했다. 경찰 발표가 정확하다면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이 명백하다. 그 교수가 손길을 놀릴 때 학생들은 입을 앙다물고 버텼을 게 분명하다. 교수가 갑질을 하면 꼼짝없이 당하는 게 학생이기에.

 미투 선언은 계속 현재형이어야 한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 전반에 미투 효과가 퍼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미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한풀이로 보일 수 있다. 남자가 무조건 당해야 하는 미투 운동은 역성차별일 수 있다는 시각도 살아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남성이 상대적으로 여성보다 우위에 서서 저지른 못된 행동을 밀어내려면 남성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고정관념은 몇 번의 충격으로 바뀌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수십 차례가 안 되면 수백 차례 혼란을 겪어야 한다.

 미투 운동이 태풍이 돼 사회 전반에 불더니 벌써 세력이 약화되는 모양새다. 미투 운동은 성적 피해자에만 국한되면 안 된다. 미투 바람이 기업 총수 일가에게 가면 ‘갑질 미투’가 되고 학교 쪽으로 방향을 틀면 ‘스쿨 미투’가 되고 의료계로 가면 ‘의료 미투’ 된다. 문화예술계로 미투 바람이 불어 포장된 아름다움 속에서 추한 모습을 우리는 봤다. 미투 바람은 모든 영역에 덕지덕지 붙은 때를 벗기는 파괴력이 있다. 종교계에서 미투 운동이 확산되는 상황은 매우 고무적이다. 종교계에 은밀하게 덮인 ‘거죽’을 걷어 내려면 강력한 미투 바람이 불어야 한다. 미투 바람이 한번에 크게 불 때 큰일을 내야 한다. 태풍이 한차례 불어 바닷속 밑바닥까지 소용돌이치게 하듯이, 사회에 굽은 생각을 펴는 데 태풍을 이용해야 한다. 그래서 미투 바람은 더 거세어야 한다. 이번 기회를 놓친 후 바닷가에 서서 다시 태풍을 기다리다 우리 사회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미투 운동이 전 분야로 확산되는 동력이 떨어지는 걸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한 연출가의 악마성이 미투 바람을 타고 올 때 모두 놀랐다. 오랫동안 못된 짓을 하면서 버젓이 얼굴을 쳐들고 천사 날갯짓을 할 때 우리 모두는 속았다. 미투 바람이 가해자가 딛고 있던 견고한 발판을 차버렸지만 그곳에서 인간성 회복이 일어났다. 미투 바람은 숭고하다. 쉽게 찾아오는 바람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이런 바람은 사회를 바꾸고 그 사회를 한 단계 성숙시킨다.

 미투 바람은 더 넓게 더 세게 불어야 한다. 특정 영역의 한계를 뛰어넘어 미투 바람은 어디든 가야 한다. 봄바람이 불면 우리 주위에 안온한 환경이 열리고, 태풍이 불면 큰 나무에 붙은 잔가지가 무차별하게 잘려나가듯, 미투 바람은 우리 사회의 가면을 벗기고 따뜻한 얼굴을 드러내면서 정이 넘치는 손길을 잡게 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미투의 바람이 불어야 할 곳이 많다. “나도 당했다”는 목소리가 거의 잦아질 때까지 미투 바람은 그래서 계속 불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