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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가야 왕성 실체 처음 확인 의미 크다
2018년 06월 07일 (목)
경남매일 7618700@kndaily.com
 대가야ㆍ금관가야와 함께 가야 중심세력을 형성했고 신라ㆍ백제ㆍ왜와 교류했다는 고대 국가인 아라가야(阿羅加耶) 왕성의 실체를 드러낼 유적이 처음 확인됐다. 아라가야에 대한 자체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아라가야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일본서기에 ‘아나가야’(阿那加耶), ‘아야가야’(阿耶伽耶), ‘안라’(安羅) 같은 다양한 이름으로 등장한다. 이번에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의 발표는 사료 연구로는 한계가 뚜렷한 상황에서 아라가야의 토목기술과 방어체계, 생활문화를 구명할 획기적 고고학 자료가 나와 큰 의미를 갖게 한다.

 이번 설명회에서 5∼6세기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8.5m, 폭 20∼40m인 성벽과 성벽 위에서 확인된 2열 나무기둥, 건물터, 구덩이 유구(遺構)가 공개됐다. 성벽은 나뭇가지나 잎을 올리고 태운 목탄층을 만들고, 그 위에 흙을 쌓아 올리는 판축기법을 사용해 축조한 흔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연구소 측은 토성 높이가 2∼4m이고, 성벽 축조 과정에서 목탄층이 드러난 사례가 처음이기 때문에 아라가야 왕성 실체를 드러낼 실마리를 찾았다고 설명했다. 아라가야 권역에서 생활유적 발굴은 그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

 이번에 나온 토성은 아라가야에 강력한 정치권력이 존재를 입증하는 큰 증거다. 또한 아라가야 유적 발굴은 지금까지 고분 중심이었는데 왕성 유적이 나오면서 최고지배층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게 됐다. 아라가야 왕성을 확인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지만 앞으로 왕성 전체 규모를 파악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금관가야뿐 아니라 모든 가야사는 지금까지 빛을 보지 못했다. 가야사는 학계의 연구도 부족했을 뿐더라 고구려, 백제, 신라에 밀려 익힌 역사로 치부됐다. 가야사 복원이 큰 물줄기를 만드는 때를 맞아 이번 아야가야 왕성의 실체가 밝혀진 만큼 장기계획을 세워 왕성 전모를 파악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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