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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담은 사진 한 장
2018년 06월 12일 (화)
이주옥 7618700@kndaily.com
   
▲ 이주옥 수필가

 사진기가 귀하던 시절, 소풍이나 운동회 때면 동네 사진관에서 사진기를 빌렸다. 행여 다치거나 망가질세라 지갑보다 더 애지중지하며 어깨에 둘러메지도 못하고 목걸이처럼 몸체가 앞쪽으로 오도록 걸었다.

 화사하게 핀 국화꽃 무더기 앞이나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언덕배기에 친구들을 쪼르르 세우거나 앉히고 마치 선심 쓰듯 조금 거들먹거리기까지 하며 셔터를 눌렀다. 그때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한 줄로 쪼르르 서서 옆 친구와 친구의 팔에 팔을 끼웠다. 아니면 풀밭에 엎드려서 턱을 괴고 다리를 올린, 너나 할 것 없는 정해진 각도와 획일적인 포즈였다.


 나를 비롯한 친구들의 추억과 시간은 셔터를 누르는 찰나에 영원으로 멈추곤 했다. 그때는 수동 카메라에 필름을 넣고 찍은 것이라서 반드시 사진관에서 인화를 해야만 찍힌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한 장 한 장 들여다보면서 때로는 굴욕적이거나 코믹한 모습에 다시 한번 그 순간 그 시간으로 여행을 하며 깔깔거렸다. 또한 필름이 다해 아쉬움에 발을 동동거리기도 하고 다 찍은 후 카메라를 열었을 때 필름이 들어 있지 않았던 황당무계한 경험도 아스라한 추억이다.

 디지털이 판을 치는 요즘, 수용할 수 있는 용량만 허락되면 필름 없이도 수백 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굳이 인화하지 않아도 영구 보관이 가능하다. 더구나 핸드폰에 성능 좋은 카메라가 장착돼 발 닿는 곳마다, 눈길 머무는 곳마다 적나라하게 흔적을 남기게 한다. 유명관광지나 유명 식당에만 가도 너나 할 것 없이 카메라부터 들이대는 광경은 이젠 흔하디 흔한 일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운영하는 개인 SNS는 그런 사진 일색이다.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굳이 말로 듣지 않아도 사진 몇 장만 보면 모두 알 수 있다. 근데 사진 속의 그들은 모두 연예인 같다. 모두들 세월을 비껴가는 요술이라도 부리는 걸까. 아니 세월을 거꾸로 타고 가는 타임머신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요즘 카메라는 기능이 좋아서 세월과 나이도 내 마음대로 보정을 할 수 있다. 얼굴의 주름 몇 개도 감쪽같이 없애고 늘어진 볼살이나 각진 턱도 갸름하게 만들 수 있다. 허락 없이 들러붙은 허릿살이나 팔뚝 살도 감쪽같이 없앨 수 있고 늘 조금 아쉬운 키도 양심껏 늘릴 수 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을 못 견뎌 감아버린 눈도 보정 터치 몇 번에 번쩍 뜨게 한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이 이야기는 요즘 아이들에게 어이없는 에피소드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또한 가끔 내 험담을 해서 심기를 건드리는 눈엣가시 같은 친구 한 명도 가차 없이 잘라내 버릴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간편하고 간단하게 실상과 모습을 조정하고 교체할 수 있는 세상이 우리에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지극히 촌스럽고 어색하지만 그때 찍어 남겨둔 사진 한 장에서 수시로 시공간을 초월한 만남을 갖는다. 이제 와 새삼스레 가릴 것도, 숨길 것도 없는 지난 삶을 진솔하게 만날 수 있다. 하나씩 늘어나는 주름에, 조금씩 변해져가는 얼굴 모양을 따라 우린 시간여행을 하고 그때 그 공간으로 언제든 다시 들어갔다 나온다.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에서 나를 돌아보고 갈무리하며 그 속에서 흐트러지고 변해가는 삶을 정비하고 곧추세운다. 그때 이후 볼 수 없는 친구도 반추하며 지금의 모습을 짐작하기도 한다.

 늙지 않고 변하고 싶지 않은 것이야 인간 모두의 바람이겠지만 그렇다고 젊은 그 모습 그대로 변함없이 살아간다 해서 어떤 행복과 충족감이 있겠는가. 세월 따라 나이 들고 그 속에서 여물어가는 삶의 씨앗을 품고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는 것이 아름다운 인생 여정이고 순리가 아닐까 싶다. 나이 들며 조금씩 조금씩 변해 온 내 모습도 거역할 수 없는 시간 속의 숭고한 흔적일 터, 찬란한 이 봄, 연둣빛 잎사귀가 더 짙어지기 전에 내 나이에 어울리고 내 얼굴에 알맞은 미소를 머금고 사진 한 장 찍어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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