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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대도호부 중심지 ‘의창동’
2018년 07월 03일 (화)
이병영 기자 bylee@kndaily.com

창원도호부 외곽 옹위 창원읍성
조선전기 교육기관 창원향교
‘고향의 봄’ 배경 이원수 문학관

추상조각 선구자 김종영 생가
 


 
 
창원읍성 터의 기단부

창원시가 공업도시에서 관광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전사적으로 관광활성화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다음 달 31일부터 오는 9월 15일까지 있을 ‘2018 창원세계사격선수권대회’를 계기로 올 한해를 ‘2018 창원 방문의 해’로 선포했다. 이와 연계해 창원시는 ‘창원 58열전’이라는 가제로 지역 내 58개 읍면동의 면면을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해 지역 활성화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한다. 이에 본지는 창원시 공보관실 이상원 주무관의 자료를 제공받아 지난달 26일 자 20면 특집기사 창원 58열전 다섯 번째로 작지만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마산회원구 봉암동에 이어 그 여섯 번째로 ‘창원대도호부의 중심지’ 의창동을 찾았다.

 

   
창원향교

창원대도호부의 중심지 의창동, 마음의 고향에서 진정한 고향으로 거듭나다.
지금으로부터 약 610년 전 의창현과 회원현이 합해 창원부로 승격되면서 ‘창원’이라는 지명이 처음 탄생했다. 그로부터 7년 후인 1415년에 창원도호부, 1601년에는 창원대도호부로 승격됐다. 당시 대도호부가 설치된 지역이 강릉ㆍ안동ㆍ안변ㆍ영변 그리고 창원까지 5곳에 불과할 만큼 창원은 예부터 행정과 군사상의 중심지였다.

 창원이라는 지명의 탄생과 창원대도호부가 언급될 때마다 빠지지 않는 곳이 있다. 바로 의창구 의창동이다. 이곳엔 창원의 뿌리고장이었던 것만큼 이를 알려주는 문화자원이 즐비하다. 창원도호부를 감싸 안았던 읍성 터가 남아있고, 교육기관인 향교도 있다. 또 오랫동안 사람들로 붐볐던 곳이다 보니 문학가 이원수, 조각가 김종영 같은 문화예술인과 많은 이야기도 전해온다.
 

   
이원수 문학관 내부

창원읍성은 조선전기 창원도호부의 외곽을 옹위하던 성이다. 성은 돌로 쌓은 석축으로 당시 높이가 약 4m, 둘레는 약 1.5㎞에 달했다고 한다. 아쉽게도 현재는 인근 초등학교 신축과 도시화 개발과정에서 심하게 훼손돼 성벽의 기단부 중 일부만이 남아 여기가 읍성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읍성지가 있는 곳에서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조선전기 지방교육기관이었던 창원향교가 나온다. 고려 충렬왕 때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창건됐는데 한 차례 자리를 옮겼다가 지난 1748년에 현재의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한다. 갑오개혁으로 교육적 기능은 없어졌지만 향교에 들어선 유치원이 그 역할을 조금이나마 대신하고 있다. 향교로 오르는 계단 좌측에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수령 220년 된 느티나무가 있다. 나무의 가지를 꺾는 사람은 신목의 벌을 받는다는 믿음도 전해진다.

 창원을 대표하는 문화예술인의 발자취도 곳곳에 남아있다. 북한에서도 부른다는 동요인 이원수 선생의 ‘고향의 봄’의 배경이 된 곳이 바로 의창동 일원이다. 선생이 10살까지 성장했던 소답동에서의 추억과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동요에 오롯이 담겨있다. 선생의 삶과 문학작품은 고향의 봄 도서관에 위치한 ‘이원수 문학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김종영 생

동요의 구절구절은 옛 의창동을 그대로 그려 놨다. ‘복숭아꽃 살구꽃’이 피었던 곳은 창원읍성에서 바라보면 나지막하게 보이는 남산이다. 앞산이라는 뜻을 지닌 남산은 꽃들뿐만 아니라 예부터 마을잔치가 열렸던 곳이기도 하다. 천주산과 남산자락에 모여 살던 마을주민들이 한 해의 농사를 끝내고 풍성한 수확에 대한 감사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데서 유래된 ‘남산상봉제’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또 동요에 나오는 ‘아기진달래’는 매년 봄이면 진달래축제가 열리는 천주산 진달래 군락지를 보고 쓴 말이다. 선생이 어렸을 적에도 천주산은 진달래 천지였다. 이어 나오는 ‘울긋불긋 꽃 대궐’은 조각가 김종영 선생의 생가를 표현했다.

 한국 현대 추상조각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김종영 선생은 조각가이자 교육자이다. 선생은 추상조각을 시도해 조각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현재 생가는 1926년에 이전ㆍ증축한 가옥이다. 1974년 이후 주위에 상가와 중고층 건물이 들어서면서 도시의 섬이 됐고 꽃 대궐은 사라졌지만, 지난 2005년에 문화재청의 등록 문화재로 지정되는 등 관심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6일에는 생가 앞 공원에서 김종영 선생 탄생 103주년을 기념한 ‘꽃 대궐 음악회’가 열리기도 했다.

 지난해 주민센터에서는 작지만 의미 있는 사업을 진행했다. 창원의 뿌리 의창동을 알리기 위해 이들 문화유적지를 연결하는 ‘의창동 문화뿌리길’을 조성한 것이다. 김종영 선생 생가를 출발해 창원읍성, 창원항교를 거쳐 이원수 선생의 성장지인 북동샘까지 이어진 길로 약 900m 코스다. 또 창원시도 창원대도호부 복원사업, 김종영 조각공원 조성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외에도 의창동에는 조선시대 충신 황시헌공의 이야기와 공을 제향하고 추모하는 문창제 놀이도 전해진다. 또 3ㆍ1 독립운동을 이어받아 창원읍에서 일제에 투항해 만세운동이 펼쳐졌던 것을 되새기기 위한 ‘창원읍민 만인 운동비’도 들어서 있다.

 의창동은 알수록 흥미로운 곳이다. 오래전부터 창원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만큼 환희와 상처도 많다. 그런데 무엇에 끌렸는지 지금도 고향으로 삼기 위해 사람들은 의창동으로 몰려든다. 어디선가 이원수 선생의 ‘고향의 봄’이 들려오는 것 같다.

자료제공= 창원시 공보관실 이상원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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