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6 17:58 (화)
김해 양동산성 집수지 목간ㆍ생활토기 출토
김해 양동산성 집수지 목간ㆍ생활토기 출토
  • 김용락 기자
  • 승인 2018.07.03 23: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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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 남아 있는 목간, 곡물 짐꼬리표 확인
   
▲ 1 철기.

  유물이 발굴된 양동산성의 집수지는 금관가야가 멸망한 532년 이후에 만들어졌고, 산성의 축조 시기 역시 집수지의 시기와 동일할 것으로 조사단은 판단했다.

 반면, 양동산성 내 집수지와 시기가 거의 동일한 부산의 배산성 내 집수지의 평면형태가 원형인 점에서 차이가 난다. 이러한 차이점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참가한 자문위원들은 의견을 모았다.

 유물은 주로 일상생활용 토기편들이 다량으로 발굴됐으며, 보존상태가 매우 좋은 철화살촉 2점과 철도끼 1점이 출토됐다. 이외에도 바가지, 국자, 소쿠리 등 생활 목기 및 짚신 등이 발굴됐다.

 특히, 김해에서 봉황동 저습지유적에 이어 두 번째로 목간이 발굴됐다.

 매우 적은 붓 글씨가 남아 있는 나무조각인 목간이 3점 발굴됐는데, 이 중 1점은 글씨가 잘 남아 있어 양동산성으로 운송한 곡물 꾸러미에 부착된 짐꼬리표로 확인됐다.

 

   
▲ 2 토기 사발.

이 짐꼬리표에 적혀 있는 글자의 기재방식이 ‘마을이름+(사람이름)+곡물이름’의 순으로 적은 함안 성산산성 부엽층에서 출토한 목간의 기재방식과 거의 흡사하고, 성산산성 목간에 적혀 있는 ‘栗村’이라는 마을 이름이 양동산성 목간에도 적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두 지역의 목간을 비교 연구하면 함안과 김해, 나아가 신라와 김해와의 관계 등을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향후 시는 보다 정밀한 판독을 위해 추가로 적외선 촬영 등을 시행하고 학계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양동산성 목간의 정확한 성격을 규명할 계획이다.

 한편, 시는 이 유적을 가야 멸망 이후 김해를 식읍으로 받은 구형왕과 신라와의 정치적 이해관계 및 당시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보고 추가 발굴 및 국가 사적 승격 신청 등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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