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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 우리 모두의 숙제
‘성희롱’ 우리 모두의 숙제
  • 임성근 순경
  • 승인 2018.07.15 2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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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들어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남성으로부터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말을 들었다는 여성의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대부분은 직접적인 신체 접촉이 없었다는 이유로 수사기관이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는다며 끝맺는다. 댓글에는 가해자에 대한 공분이나 수사기관에 대한 성토가 이어진다.

 실제로 현장 근무를 통해 성희롱을 당했다는 신고를 많이 접한다. “애를 낳으면 성욕이 줄지 않느냐”에서 “너와 XX하고 싶다” 등 모욕의 종류도 다양하다. 차마 지면에 담기 힘든 수준의 노골적인 표현도 상당하다. 이에 최대한 피해자의 입장에서의 처벌을 위해 관련 부서가 머리를 맞대지만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현행법상 신체적 접촉이 없는 단순 성희롱을 처벌하는 법적 근거가 없다. 예를 들어 직장 내 성희롱이 발생했을 경우 남녀고용평등법(남녀 고용 평등과 일 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한 징계 절차를 밟거나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방안이 유일하다.

 아동에 관해서는 아동복지법 위반(아동에게 음란한 행위를 시키거나 이를 매개하는 행위, 아동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성희롱 등의 성적 학대행위)으로 처벌할 수 있다. 아동을 특별하게 보호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성적 수치심의 크기와 고통에는 아동과 성인의 구분이 무의미하다.

 현장에서는 마땅한 성희롱 처벌 규정이 없어 다른 처벌 방안까지 끌어오는 상상력을 발휘하기 일쑤다. ‘불안감 조성’이나 ‘지속적 괴롭힘’ 등의 경범죄에 해당하는 처벌 요건을 검토하지만, 이는 가해자에 대한 합당한 처벌로 이어지기 어렵다. 일률적으로 적용하기 어렵고, 실제 집행이 되더라도 10만 원 이하의 과태료에 불과하다.

 프랑스에서는 지나가는 여성을 상대로 휘파람을 불거나 외모를 품평하는 이른바 캣콜링(Catcalling)을 처벌하는 법이 지난 5월 하원을 통과했다. 이에 따라 길거리 성희롱 가해자에 최소 90유로에서 최대 750유로(한화 약 95만 원)까지 벌금을 물을 수 있다. 만연한 길거리 성희롱의 심각성을 프랑스 정부가 인지했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지난 1999년 2월 대학 내 성희롱 사건을 계기로 ‘남녀고용평등법과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이 법제화된 적 있다. 이후 19년이 지났지만, 성희롱 근절을 위해 보완해야 할 지점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무엇보다 명확한 처벌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늘어나는 피해자의 고통을 방치해서는 곤란하다. 성희롱은 결코 가벼운 범죄가 아님을 가해자들이 체감할 만한 처벌 규정이 시급하다.

 현장에서 수많은 성희롱 피해자를 접하며 느낀 점이 있다. 그동안 성희롱을 나와 무관한 ‘그들만의 문제’로 치부했던 무지다. 평범한 피해자들과 대화하며 많은 부분의 변화가 필요함을 절감했다. 첫걸음은 성희롱을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인식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모든 국민에게 당면한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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