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4:31 (금)
젊은이들을 벼랑으로 내모는 기성세대
젊은이들을 벼랑으로 내모는 기성세대
  • 경남매일
  • 승인 2018.08.02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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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영 부국장ㆍ사회부장

최근 만나본 20~30대 젊은이들은 말이 별로 없었다. 주변 또래들과는 그렇지 않지만 친해도 그만 친하지 않아도 그만인 어른들에게는 이상하리만큼 말을 아꼈다. 그러기를 한참 지나 술이 거나하게 취할 무렵 굳게 닫혔던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 세상에 대한 원망이 묻어나왔다. 자신감을 잃은 비루한 자신을 스스로 조롱하는 듯한 말도 나왔다. 뭣 하나 열심히 하는 것도 없는 친구가 부모 잘 만났다는 이유로 어깨 힘주며 자신을 깔보는 것 같아 참기 힘들다는 말도 했다.

한 30대 초반인 한 친구는 창원의 한 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한다. 눈치로 봐서는 300만 원이 채 안 되는 월급을 받는 것 같았다. 결코 작은 월급이라고는 할 수 없는데도 그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더 잘살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에 짙은 회의를 갖고 있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 열심히 돈을 모으기는 해도 결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없었다.

누가 나한테 시집을 오겠냐는 자조를 했다. 친구들과 만나 떠들고 술 마시는 것이 거의 유일하게 나를 웃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한 친구는 40을 바라본다. 대학을 나와 여러 군데 취직에 도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아버지의 도움으로 작은 공장을 운영한다. 그러나 제조업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일하는 시간이 대폭 줄었다고 한다. 결혼도 아직 하지 않았다. 아니 하려고 한 적도 없다. 부모와의 대화도 친구와의 만남도 거의 없는 눈치다. 그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드론을 띄우고 오토바이를 타는 것뿐이다.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내가 만난 젊은이 대부분은 패기도, 용기도 없는 자신들을 괴로워했다. 부모에 대한 죄스러움,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괴로워했다. 이들을 더 좌절케 하는 것은 자신들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게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었다.

일부 대기업에 취직한 친구들을 빼면 젊은이 대부분이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으로 간다. 그나마 정규직도 아닌 경우가 많다. 인턴으로 비정규직으로 1년을 힘들게 버텨도 정규직이 된다는 믿음이 없다. 대부분 1년짜리 소모품으로 지내다 버려진다. 이들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주류사회에서 밀려났다는 좌절감을 안고 먼 인생을 시작한다. 이들에게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어른들의 충고가 들리지 않는다. 아니 젊은이들을 사지에 몰아넣은 기성세대들의 기만이라는 분노가 치민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새로운 신분질서의 밑바닥을 차지한 자신의 가슴을 치는 것뿐이다.

이들에게 힘이 돼 줄 수 있는 사람은 결국 힘을 가진 기성세대들이다. 그런데 잘나가는 기성세대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조금도 양보하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직장세습까지 하려 든다. 파이를 키워 많은 젊은이들과 나누려 하기보다는 있는 것만 잘 지키자는 무한욕심으로 가득 차 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 집 사고 단란한 가정을 꾸린 자신의 소박한 성공을 자녀세대에게도 물려줄 뜻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내 가족이 잘 먹고 잘 살면 그뿐이다.

이런 부조리를 바로잡을 정치는 표 때문인지 문제를 직시하지 않는다. 지지세력에 갇혀 설득할 용기도 절연할 과단성도 없다. 기껏 하는 것이라고는 그 책임을 정치적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것뿐이다. 벼랑 끝에 내몰린 젊은이들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많지만 결과물은 신통치 않다.
정치는 국민을 안전하게 잘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처음이자 끝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가 작동되는 원리는 오직 정권 장악에 기초하고 그곳으로 귀결된다.

대한민국이 깊은 수렁에 빠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수렁은 문제의식은 있어도 문제를 풀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정치뿐만 아니라 이 사회의 든든한 중심이 돼야 할 지식인 사회도 무력하기 짝이 없다. 정치권을 기웃거리며 자리나 탐내는 학자들이 득실거린다. 나라가 넘어갈 지경인데 모래알처럼 굴다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구한말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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