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7:28 (금)
‘희망과 평화의 나비’ 김해에 앉다
‘희망과 평화의 나비’ 김해에 앉다
  • 박경애 기자
  • 승인 2018.08.16 1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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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기림의 날’ 맞아 ‘김해평화의소녀상제막식’

106개시민사회단체·평화나비회원2122명·7천여만원

소녀상 어떻게 지킬래?…‘비올때 우산 씌워 줄거야

정부 주관 첫 ‘위안부 기림의 날’인 지난 14일 ‘김해평화의소녀상’ 제막식이 연지공원에서 열렸다.

‘김해평화의소녀상’은 김해지역 106개 시민사회단체와 김해평화나비회원 2천122명이 참여해 총 7천8백8십7만2천729원의 모금액으로 세워졌다. 지난해 6월 27일 건립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 발족 이후 1년 2개월여 만의 일이다.

절단된 화강석(거창석) 받침 위에 170㎝ 높이 황동 재질로 제작된 맨발의 소녀상은 앞으로 뻗은 오른손등 위로 한 마리 나비가 앉은 단발머리 소녀형상으로 제작됐다.

작가노트에 의하면 사선으로 잘려진 돌조각은 어린 소녀가 겪은 고통과 애환·불행한 현실 등을 의미하며 단발머리는 소녀들의 당시 현실과 단절된 모습, 맨발은 당시 도망조차 할 수 없던 상황이었지만 이제는 희망을 노래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여기다 손등의 나비는 기쁨·행복·희망을 상징하면서 그들의 불행한 과거와 아픔을 우리 모두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를 함축하고 있다.

광복절을 하루 앞두고 열린 이날 행사에 박영태 집행위원장을 비롯한 김형수 김해시의회 의장 등의 다수의 내빈과 시민이 참석했다.

김형수 의장은 “소녀상건립문제로 작년 1년 동안 김해는 뜨거웠다”면서 “이 자리에 많은 시민이 찾아줘 고맙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이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에 소녀상을 잘 지킬 수 있는 조례를 김해시의회에서 만들 수 있게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날 내빈으로 참석한 신용진 김해교육지원청장 또한 “평화의 소녀상건립을 통해 일제만행을 기억하면서 친일청산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그는 “소녀상은 우리학생들의 역사교육현장으로 충분히 활용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면서 “우리의 뼈아픈 역사를 바로 기억하는 것, 그리고 그 역사를 후손들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것, 이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막식행사는 상임대표위 외 추진위원회, 여성가족부의 행정적 도움, 서포터즈(자원봉사) 부녀회(대표 천순돌)와 평화나비회원들의 마음이 모이고 이어져 발현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식순에서 작가협회 김미경 씨가 낭독한 ‘평화가 춤춘다’에서 “나 그때 열세 살 철부지 어린

아이였습니다…몰랐습니다. 남의 나라 식민지로 겪는 설움이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 무서운 시절을…”이라며 함께 모인 시민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특히 ‘원초적 몸짓’으로 유명한 동래학춤 전수자 박소산의 ‘평화의 학춤’ 공연은 참석한 모든 이들을 숙연하게 했다. 소녀상 앞에 한 마리 학으로 다가가 소녀에 묵념하면서 또 소녀상 주변을 힘 있게 나는 안무를 통해 일본군위안부피해자들에게 자유로운 내세를 확신하는 듯한 이미지를 선보였다. 곧 이어진 청소년들의 ‘헌화’와 ‘살풀이춤’ 또한 그들의 한을 달래는 의식으로 보여 지며 연지공원을 찾은 이들의 마음을 모았다.

서포터즈(자원봉사)로 활약한 박미라(김해여성의전화) 씨는 “학춤·살풀이 공연 중 일본군위안부피해자할머니들이 생각나 마음이 많이 아팠다”면서 “차세대로서 미해결 과거청산문제를 하루 빨리 해결하고자 다짐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녀는 “앞으로 의회가 열리면 ‘김해시일본군위안부피해자 관리조례제정조례안’의 추진위공동발언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히며 “소녀상의 안전관리·보존에 관한 부분도 조례안에 들어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소녀상 주변으로 한 시민에 의한 조명 설치 자발기부소식이 있다”고 들뜬 감회를 전했다.

이날 부대행사로 오후 5시 30분부터 풍물공연과 경과보고, 제막식, 평화의 학춤, 축시 낭송, 살풀이, 평화음악회 등이 열렸다. “노래가 이야기고 이야기가 노래다”라고 자신의 소신을 밝힌 홍순관 씨는 “최후의 피해자 1인이 돌아가시지 전에 이 일을 해결해야 한다”면서 “우리 전체가 이 일을 해결하려고 마음을 모아야 한다. 그것이 자존감이고 민족애다”고 강조하며 ‘꽃 한 송이 핀다고 봄이 아니다’란 노래를 열창했다.

이어서 그는 “…평화로 산다는 것은 저녁 눈물로 사는 것, 쉰 살도 되지 않은 늙은 청년의 얼굴로 사는 것…평화는 한 벌의 속옷과 그 흔한 신발로 사는 것”이라며 “평화로 춤추지 않으면 세상은 큰 무덤이 되리니”라는 심오한 가사말을 풀어냈다. 여기다 홍순관은 “큰 나무만으로는 산을 이룰 수 없네…”라면서 우리 모두의 마음 합침을 또 다시 노래했다.

최초로 이 행사의 싹을 틔운 최성은(인제대학교 제약공학과 3년) 씨에 의하면 2015년도에 서울로 소녀상 기행을 다녀오다 내려오는 길에 후배가 ‘왜 김해에는 소녀상이 없냐’는 말에 김해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있어야 하고 이를 만들어봐야겠다고 다짐 아래 소녀상이 건립되게 됐다. 최 씨는 처음에는 학교 정문에서 테이블 하나에 소원 팔찌 두세 개를 두고 그 상품을 팔아 소녀상 기금마련에 나서다 차츰 동참인원이 많아졌다고 한다.

그래서 김해시민단체회원들의 러브콜을 받게 되었고 각계각층 일반인들과 함께 상임대표를 맡아 작년부터 건립움직임을 이어오게 됐다. 때문에 그녀는 소녀상건립소감에서 “소녀상은 동상 자체가 하나의 의미이며 평화이고 역사청산이라 생각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기 생활 곳곳에서 평화를 찾아가는 것이 소녀상의 건립목적”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소녀상은 앞으로 나아갈 우리 미래이며 소망이다. 그래서 이 의미를 어떻게 더 가져 갈 건지 어떻게 더 확산할건지를 오늘을 기해 더 뜻 깊게 새길 것”이라고 희망에 찬 목소리로 응대했다.

최 씨는 “소녀상을 지켜나갈 방도를 모색하고 있다”면서 “아직 조례가 제정되지 않아 제도적으로 보장받지 않은 상태이기에 시민의 힘으로 소녀상을 지키는 데 주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래서 그것의 일환으로 “소녀상 주변에서 백일장을 연다던지, 소녀상지킴이를 결성해 소녀상의 의미를 시민에게 설명해주는 문제도 구상 중”이라고 앞으로의 포부를 전했다.

그래서 최성은 씨에게는 걱정이 있다. 지난 5월 1일 창원 정우상가 광장에 세워진 노동자·소녀·소녀 3인상은 정우상가운영위에 의해 그 안전과 청결이 유지되는데 반해 김해소녀상은 현재 안전과 보존부분에서 제도적 보호가 어렵기 때문이다. 장소가 공원이다 보니 훼손과 낚서 등 무방비상태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법으로 보존되기 전까지는 우리들 청년이 앞장서 이를 지켜나가겠다”고 책임감 있는 목소리를 드러냈다.

어방동에 사는 신해선 씨는 “소녀상 만든다고 해서 딸아이랑 평화나비회원에 가입했다”면서 “할머니들의 아픈 역사를 후세대와 공유하고자 오게 됐다”고 참석소감을 밝혔다. 그녀의 딸 금시현(김해삼성초2년) 양은 “다시는 이런 일이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해맑은 동심을 보였다.

소녀상 제작은 공모를 통해 배승호, 고명진(김해미협) 부부 작가가 선정됐다. 배승호 씨는 “뜻깊은 행사에 작가 입장에서 작품으로 참여하게 돼 무한영광”이라고 한껏 들뜬 목소리를 냈다. 고명진 씨는 “어둠 속에서 보이는 실오라기 같은 ‘희망’에 초점을 두고 작업했다”면서 “‘살풀이’ 등 공연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다”고 차분하게 소감을 밝혔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많은 남녀노소 시민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여든 일곱의 고동수(구산동 백조A) 씨는 “제막식 한다는 소식을 듣고 왔다”면서 “감계무량하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목소리에 힘을 모았다.

참석 시민 중 신혜정(율하동) 씨는 “친구의 권유로 아이들을 데리고 왔는데 아이들에게 이런 현장을 보여주고 여러 체험을 하게 해 줘 너무 뜻 깊게 생각 한다”면서 “이곳에 자주 와 소녀상의 안전보존여부를 확인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동행한 최나영(율하동) 씨도 “노란 풍선이 하늘로 올라갈 때 할머니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했다”면서 “딸아이한테 소녀상 어떻게 지킬래? 하니까 ‘비 올 때 우산 씌워 줄 거야, 아니면 집에 데리고 올 거야’ 하는 말을 들으니 아이랑 잘 온 것 같고 또 뜻 깊다”고 감회를 전했다.

이날 공연의 마지막은 중학생 소녀 2명과 청년 2명으로 구성된 ‘행복발굴단’이 맡았다. 우리 민요 ‘아리랑’을 편곡한 노래연극으로, 어린 날 고향동산에서 행복하게 뛰놀던 소녀가 일본인에게 붙잡혀가는 모습을 그린 노래가 먼저 열연됐다. 뒤이어진 ‘고향의 봄’은 모인 시민들이 따라 부르며 정취를 더했다.

오후 8시부터는 연지공원 내 인공연못에서 ‘김해시평화의소녀상’에 관한 영상과 오색찬란한 음악분수쇼가 이어졌다. 광복절 휴일을 앞둔 날, 가족단위 관람객들은 편안하고 여유롭게 역사적 의미를 거듭 새기는 시간이 됐다.

이날 행사에는 ‘캘리그라피 6행시 짓기’, ‘평화나비만들기’, ‘페이스페인팅’, ‘평화목걸이만들기’ 등의 부대행사가 준비돼 제막식에 참석한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2018년 8월 14일. 다시 고개를 쳐든 폭염이 하루 종일 몸살 했던 날이었지만 많은 이들의 힘과 의지가 모여 결실을 맺은 자리니만큼 연지공원의 뭉클한 기운은 마지막까지 웅장했다. 노란 풍선이 하늘로 올라갈 때 그 뜨겁지만 소리 없는 함성, 그 울컥한 고요가 꺼이꺼이 숨어있던 그날은 길이 기억되고 회자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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