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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간의 미친美親 소리 가야 가락 금관 그리고...’
‘김종간의 미친美親 소리 가야 가락 금관 그리고...’
  • 박경애 기자
  • 승인 2018.10.02 13: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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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간 김해향토문화연구소장.

김종간 전 김해시장 출판기념회

6일 국립김해박물관 대강당

 김종간 김해향토문화연구소장(전 김해시장)의 16번째 저서 ‘김종간의 미친美親 소리 가야 가락 금관 그리고...’의 출판기념회가 오는 6일 오후 2시 30분 국립김해박물관 대강당에서 열린다.

 김종간 소장에 따르면 지난 1985년 민간인으로서는 최초로 ‘가야문화운동’을 일으켰다. 그는 이와 관련해 1997년 ‘가야’라는 격월간지를 3회 발간한 바 있다. 2004년부터는 한동안 가야대학교에서 가야사를 가르치기도 했다. 또한 1989년부터 약 10년간 김해신문의 발행인도 맡았다. 무엇보다 4대 김해시장을 역임하며 김해의 대표차로 알려져 있는 ‘장군차’ 보급에 힘쓴 것으로 유명하다. 1987년 ‘가야의 얼을 찾아서’라는 저서에서 “구석기를 거쳐 삼한시대를 지나 현재에 이르는 우리의 역사에서 ‘가야’는 늘 여기에 있었고, 여기에 있다”고 가야후손으로서의 자부심과 가야역사연구의 필요성을 밝힌 바 있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가야문화운동은 많은 과정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의 이번 저서 발간은 김해 태생인 그가 자신의 고향역사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는 방편이면서 그 역사를 좀 더 제대로 해석해 이를 역사 속 한 페이지로 남기기 위해서다. 이것은 김종간 소장만의 고향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이번 저서 발간에 앞서 본지는 그의 감회를 담았다. <편집자 주>

 △ ‘김종간의 미친美親 소리 가야 가락 금관 그리고...’ 출판 이유에 대해?

▲ ‘김종간의 미친美親 소리 가야 가락 금관 그리고...’ 책 표지.

 고려 때부터 충렬왕을 비롯해 영의정과 시인묵객들까지 즐겨 찾아 시를 읊었을 만큼 가락 가야의 이야기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들이 한문으로 쓰여 있어 제대로 된 해석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미 ‘가야의 노래 금릉팔경’에서 좀 더 본래 의미에 가까운 말로 해석하고자 노력했다. 이렇듯 한문으로 된 가야 관련 옛 문헌의 내용을 제대로 해석해 가야가락국의 역사를 제대로 정립하기 위해 이 책을 내게 됐다.

 △ 책의 내용은?

 지난해 8월에 탈고한 이 책은 총 314페이지에 걸쳐 가야가락의 역사를 세심히 다루고 있다. 제1장 ‘가야의 종주국 가락가야’를 시작으로 ‘구지봉에서 부른 민주노래’, ‘가락국 시조릉’, ‘흘러 흘러 1천 3백리 도요진ㆍ내진ㆍ황산강,’ ‘가락국 주산 분산ㆍ분산성ㆍ만장대ㆍ타고봉’, ‘불우에서 부른 노래 감로사ㆍ금강사ㆍ구암암ㆍ은하사ㆍ장유암’, ‘도읍의 정자 연자루ㆍ함허정ㆍ산해정’, ‘금릉의 노래 금릉팔경ㆍ금릉팔적’, ‘산과 물의 대 초현대ㆍ산산대ㆍ봉황대ㆍ영모대ㆍ외장대’, ‘물의 노래 호계천ㆍ남포연가ㆍ칠점산의 노래ㆍ금천교ㆍ명호’, ‘아쉬움을 더하며 객사의 밤회포ㆍ사마소ㆍ차판상운’, ‘21세기 급바다 산에서 부른 노래’로 돼 있다.

 △ 향후 포부는?

 가야사가 밝혀진다는 것은 향후 ‘바른 삶’을 살 수 있는, 그래서 ‘행복’할 수 있는 원동력을 만드는 것과 같다. 혹은 왜곡되고 혹은 밝혀지지 않은 가야사를 많은 역사ㆍ문화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 ‘아! 가야’ 하고 외칠 수 있는 역사정립이 앞으로의 꿈이다.

 한편, 이번 저서의 발간에 부치는 글에서 김 소장과 30년 지기인 신경철 부산대학교 명예교수에 의하면 그는 뛰어난 집중력과 놀라운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신 교수는 “그의 인생에 좌절의 시기가 종종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긍정적 사고관으로 매사를 낙관하여 왔다”고 김종간을 회고했다.

 발간 인사말에서 ‘가야 파수꾼 김종간!’이라고 칭한 조영제 경상대학교 사학과 교수는 향토사학자이면서 전 행정가였던 김종간 소장의 노고를 되새겼다. 여기서 조 교수는 “김수로 이후 금관가야의 구체적 기록이 없다”며“김종간 소장은 일찍이 역사문화전문지 ‘가야(伽耶)’를 발행해 일반인들의 관심을 고조시켰다”고 김 소장의 이번 저서 발간을 축하했다.

 특히 이번 저서에서 김 소장은 “금관(金官)은 나라이름이 아니라 가야제국 종주국이었던 가락국이 신라에 병합된 후 만들어진 신라의 자치주 이름이었다”고 소신을 밝혔다. 그에 의하면 금관이라는 말은 벼슬(왕)을 했던 김수로의 후손과 그 백성들이 살아가는 고을이라고 법흥왕이 내려준 것이다. “법흥왕은 쇠를 잘 다루는 가야인들의 나라 잃은 슬픔을 금관(金官)이란 이름으로까지 달래 주었던 것이 아닐까?”라고 말하는 김 소장의 눈가가 촉촉하다. 본지는 ‘김종간의 미친美親 소리 가야 가락 금관 그리고...’ 발간을 지면을 통해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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