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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성 성주 양만춘은 여자였다?
안시성 성주 양만춘은 여자였다?
  • 이병영 제2사회부 부장
  • 승인 2018.10.10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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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영 제2사회부 부장

 개봉 후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며 관객 500만을 돌파한 영화 ‘안시성’은 당나라 태종의 대군을 맞이해 고구려 안시성을 지키던 성주 양만춘과 그의 휘하 군사들의 활약을 다룬 영화다.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에도 안시성 전투는 고당 전쟁의 위대한 승리로 적혀있을 만큼 역사적 의미가 큰 전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안시성의 성주 이름 양만춘이 사실은 실존하지 않는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일반적으로 정사(正史)로 알려진 ‘삼국사기’에서는 안시성의 성주 이름을 전하지 않는다고 한다. ‘양만춘’이라는 이름은 그럼 어디서 전해졌는가? 안시성 성주의 이름이 양만춘이라는 기록은 안시성 전투로부터 1천년 후인 조선시대에서야 등장한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구원하러 온 명나라 장수가 윤근수에게 안시성 성주 이름이 ‘당서연의’에 양만춘이라 등장한다고 말하면서, 그 후 쭉 ‘안시성 주 = 양만춘’이라는 공식이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왜 안시성 주는 자신이 살던 시대에 자신의 이름을 역사서에 남기지 못했을까? 이 이유에 대해 소설 ‘대조영(안지상 저, 아티라노 출판사)’에서는 재미있는 가설을 내비쳤다. 바로 안시성 주가 여자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남성 중심적인 유교 문화가 강했던 국가였고, 고구려를 침공한 당나라 황제 이세민의 입장에서 적장이 여자인 데다 여자에게 대패를 당했으니 이를 수치스럽게 여겨 안시성 주에 관한 모든 기록을 말살시킨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소설 속 양만춘 캐릭터를 용맹한 여성 장군으로 재탄생시켜놓았다.

 실제로 고구려의 역사를 살펴보면 여성의 지위가 오늘날 못지않은 모습을 보이는데 안시성 전투가 있었던 비슷한 시기에 평강공주는 온달과 자유연애로 결혼을 했고, 연개소문의 여동생 연수영 역시 수군을 이끄는 장수로 활약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안시성 전투가 있던 645년 당나라 군대는 바다를 통한 공격도 진행했는데 이때 바다에서 당나라군을 막았던 것이 연수영 장군이었다.

 그런데 중국 측 기록에는 연수영에 관한 이름이 기록돼 있지 않다. 연수영 장군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랴오닝 반도에 남은 고구려 비석을 통해 알려진 것이다. 똑같이 당나라 군사를 격퇴한 안시성 주는 비석조차 지금까지 남지 못해 결국 오늘날까지 그 이름이 ‘양만춘’인지 아닌지 묘연하게 된 것이다. 소설 ‘대조영’은 이런 근거로 양만춘을 여성 장군으로 묘사했고, 조금이나마 부족한 우리의 역사에 다가가고자 한 노력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소설 속 설정이지만 거대한 중국 대륙이 대군을 물리친, 이름조차 제대로 기록되지 못한 한 영웅이 여성이었다면 한민족의 역사에 새로운 여성 위인이 탄생치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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