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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행 끝내고 이제 고향으로 돌아 오시죠”
“긴 여행 끝내고 이제 고향으로 돌아 오시죠”
  • 승인 2006.06.03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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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유일 국보 ‘청곡사 괘불’ 내년 부처님 오신 날 귀향
진주 청곡사 박물관 내년 초 완공 예정
문화유산 수십여점 전시 장관 연출 기대
지난달 불기 2500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이건무)에 진주 청곡사의 괘불(국보 302호)이 등장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전국 각지의 수많은 사람들이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아 길이 10m, 폭 6.37m에 달하는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를 보고 감탄사를 연발했으며, 지난달 16일에는 방한 중인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내외가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해 청곡사 괘불을 관람, 그 웅장함에 매료됐다고 한다.
또 국립중앙박물관이 테마전시 소책자 ‘법당 밖으로 나온 큰 불화’를 최근 펴내며 총 6권으로 계획된 테마전 소책자 시리즈 중 그 첫번째 책으로 청곡사 괘불의 도판과 설명을 담는 등 처음으로 모습을 들어낸 청곡사 괘불에 대한 관심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괘불의 고향인 진주의 시민들은 이번 부처님 오신 날 뿐만 아니라 몇 년째 진주의 유일한 보물을 볼 수가 없었다.
청곡사 괘불이 고향을 떠난 이유는 6,7년전 청곡사 각종 유물들이 도난 당하고 괘불은 여섯군데가 찢어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청곡사측은 괘불을 수리, 보관할 곳을 찾아 나섰지만 이 대형 국보를 맡을 만한 곳이 나타나지 않아 방치되던 중 2001년 청곡사 주지로 서강스님이 부임한 후 2002년 수소문 끝에 6개월간의 대대적인 수리작업에 들어갔다.
이후 괘불은 2003년 10월부터 도내에서 유일하게 보관이 가능한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돼 왔으며 최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서울 나들이에 나서면서 주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전국적으로 청곡사 괘불에 대한 관심이 높은 가운데 진주시 금산면 갈전리의 아름다운 산길 옆에 위치한 전통사찰 제74호 월아산 청곡사는 바쁘게 사찰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공사현장에서 인부들과 함께 일을 하던 청곡사 주지 서강스님은 “드디어 괘불이 청곡사로 돌아옵니다”며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흐르는 땀을 닦았다.
“이제 긴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올 때가 되었습니다”
청곡사 괘불이 내년 초 고향으로 돌아온다.
청곡사에 따르면 내년 초, 지하 1층 지상 2층의 청곡사 박물관을 완공해 그렇게 고대하던 괘불이 진주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와 내년 부처님 오신 날에는 시민들에게 그 크고 화려한 자태를 선보일 예정이다.
내년 초 완공될 이곳 청곡사 박물관에서 괘불을 비롯해 초선천주 대범천왕, 도리천주 재석천왕(보물 1232호)과 청동 은상감 향로, 후불탱화, 대웅전 불 보살, 백·적면 인왕산, 괘불대, 해태상 법고 등 수많은 청곡사의 문화유산 수십여점이 그 화려한 자태를 뽐내 장관을 연출할 것으로 보인다.
청곡사에는 태조 이성계와 이 곳 출신인 경처(京妻) 강비의 역사속 청곡사에 얽힌 이야기, 죽은 이의 죄를 따져 묻는 업경전과 당간지주에 새겨진 네발 달린 사람의 얼굴 모습, 풍수지리적으로 청곡사 날개 쭉지에 삼층석탑이 놓여져 있는 이유, 사랑채를 만들기 위해 선불장을 뜯어 낸 흔적과 사연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거리 또한 많다.
청곡사 주지 서강스님은 “사찰을 크게 짓는게 아니라 자연과 하나되게 짓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며 “진주시가 잘되야 청곡사도 좋고 청곡사가 잘되야 진주시민이 좋은 것이 아니냐”며 더불어 사는 미덕을 강조했다.
또 그는 “이곳에 처음 부임했을 때 청곡사는 쓰레기 더미로 가득해 거의 버려진 절과 같았다”며 당시 암담하던 청곡사 상황을 이야기하며 괘불이 돌아오기까지 청곡사를 위해 애써준 진주시민들과 신도들, 정영석 진주시장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한편 서강스님은 2002년부터 10년 계획을 세워 청곡사 박물관 건설 뿐만 아니라 자연과 하나되는 청곡사를 만들기 위해 청곡사 안밖으로 대대적인 공사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신라 말 도선국사(827∼898)가 진주 남강에서 푸른 학이 이곳 월아산 기슭으로 날아와 앉자 성스러운 기운이 있다하여 세웠진 청곡사는 월아산 등산로를 따라 학영지라는 아담한 연못과 청곡사 일주문을 지나 산새소리 정겨운 곳에 자리잡고 있다.
수많은 문화유산과 이야기 가득한, 빛바랜 지붕단청이 아름다움을 더 하는 청곡사.
이 여름 시원한 산바람 속 청곡사에 들러 내년초 고향으로 돌아오는 진주 청곡사 대형괘불의 웅장함과 화려함을 미리 느껴 보는 것은 어떨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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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사 괘불은...
괘불은 ‘거는 불화’라는 의미로, 법당에 들어갈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인 불교 의식에 사용하는 의식용 불화이다.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고, 수많은 이들의 소망을 이루어줄 수 있는 신통력을 강조하기 위해 이처럼 크게 그린다.
괘불은 동북아시아의 불교 문화를 공유했던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국의 특징적인 불화이다.
청곡사 괘불은 길이 10m, 폭 6.37m에 달하는 야외 의식용 큰 불화로, 조선 후기 가장 대표적인 불화승(佛畵僧)인 의겸(義謙)이 열명의 화승과 함께 제작한 것이다. 의겸은 18세기 중후반 전라도와 경상도 일대 사찰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불화를 제작했으며, 평생 다섯 점의 괘불을 남겼다.
청곡사 괘불은 의겸이 그린 괘불 중 가장 시대가 앞선 예로, 화려하고 다채로운 문양이 특징이다. 의겸이 그린 괘불은 모두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다보불과 아미타불, 관음·세지보살과 문수·보현보살의 네 보살로 이루어진 공통점을 보인다.
괘불을 살펴보면 중앙의 주불(主佛)은 석가여래(釋迦如來)부처님으로 나발과 육계가 뚜렷하며 수인은 통인을 하고 있는데 전체적인 모습은 화문(花紋)이 고르게 시문되어 화려하고 섬세한 옷을 걸치시고 원만 구족한 상을 나투시어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새롭게 갖도록 조성하였다.
괘불의 부처님을 중심으로 최상단에는 하나같이 녹색(綠色) 두광(頭光)을 갖추고 왼쪽에 백의관음보살(白衣觀音菩薩)과 바른 편으로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이 자리하고 있으며 바로 아래 좌우로 아미타불과 약사여래 부처가 있다.
석가여래 부처의 10대 제자 중 가섭존자와 아난존자 제자상이 배치되어 있고, 보관(寶冠)을 쓰고 있는 좌우 협시보살(脇侍菩薩)은 좌보처(左補處)가 문수(文殊), 우보처(右補處)가 보현보살(普賢菩薩)로 이 괘불이 갖고 있는 뜻은, 영축산에서 설법하고 제자들을 이끌고 내려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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