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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장 신한균 선생, 회령 유약 국내 최초 재현 성공
사기장 신한균 선생, 회령 유약 국내 최초 재현 성공
  • 승인 2006.07.13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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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기장의 아들로 태어난 것 나의 운명”
사기장 신한균(47)선생이 사발에 숨겨진 진실과 미학의 실체를 정립한 ‘우리사발 이야기’를 출간했다.
신한균 사기장은 도자기의 과학적 원리를 공부하지 않는다면 기능장은 될 수 있지만 도예가인 사기장은 될 수 없다는 신념으로 조선 사발의 옛 도요지를 찾아 헤맨 끝에 사기장의 시각에서 사기장의 철학과 이론을 정립한 책을 출간, 힘든 여건 속에서도 도예의 길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수많은 기능장들로부터 희망의 빛이 되고 있다.
신 선생은 “사발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간파하지 못하는 너희들이 만든 지금의 차사발은 너희들 말처럼 차사발이 아니고 막사발이다란 일본인들의 소리 없는 비아냥거림에 사기장의 아들로 태어난 자신의 운명을 깨달았다”며 “일본인들이 우리 사발을 국보와 보물로 지정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 조상의 사발이기에 우리는 그 이유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책 출간 이유를 밝혔다.
사발의 역사와 이론, 철학을 재정비한 신한균 선생이 도예가들의 길라잡이로 활동하게 된 때는 지난 1995년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5년 신 선생이 우리 사발에 대한 숨겨진 진실과 미학을 찾아 ‘열병’을 앓으면서 비롯된 사기장의 아들로 태어난 운명의 삶이 도예가에 대한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지금껏 끈끈이 이어져 오고 있다.
신 선생은 평소에도 늘 “나는 신정희의 큰 아들이다. 아버지가 이것을 최초로 재현했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이것들이 정말 우리 민족에게 ‘막사발’이었던가?”란 의문속에 우리 사발들의 미학을 교묘히 일본인들의 미학으로 바꾸어놓은 실체를 엿본 것이다.
이러한 신 선생의 신념 때문에 몸은 아버지 신정희 옹을 떠나 서울에 있을지라도 마음만은 사기장을 떠나본 적이 없는 그가 우리 사발에 숨겨진 진실과 미학의 실체를 찾아 사발의 역사와 이론, 철학을 정립한 것은 어찌 보면 숙명과도 같은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신 선생은 우리 옛 사발의 실체를 모르고 그냥 일본책에 등장하는 사진만 보고 빚은 사발들을 가지고 연 일본의 전시장에서 “자기 조상이 빚은 사발, 그 사발의 역사와 미학도 모르면서 그냥 사발을 빚어오는 한국의 도예가들...”이란 등 뒤에서 소리 없이 전달되는 그 소리에 가슴이 저려옴을 느꼈다는 것이다.
사기장에서 태어난 신 선생은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석사과정까지 학자적인 기질과 교육적 열정이 남달랐던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 단적인 예로 신 선생이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도자기 자문을 맡는 등 조선 사기장의 후예로서, 조선 사발의 영예를 되찾기 위한 시도를 들 수 있다.
그 시도로 책을 쓰기로 작정한 신 선생은 옛 고요지 뿐만 아니라 조선 사발이 있다는 미술관, 명품을 가지고 있는 개인 소장 가들을 직접 찾아 나서는 등 10년의 세월을 사발의 연구에 매달렸다.
또한 이에 앞선 1989년 우리 사발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의 여러 박물관과 미술관을 찾아 다닐 때 일본 고유의 옛 도자기 전시회를 관람하면서 조선의 영향을 받지 않은 도자기를 조선서 건너온 도자기 기법으로 빚었다는 ‘조선 카라쯔’에 그의 고민은 시작됐다.
그는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일본의 도서관, 미술관, 박물관 등을 샅샅이 뒤지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500년 전 임진왜란 훨씬 전에 지금의 북한 땅인 회령에서 왜구에게 납치된 사기장들이 ‘오고려, 조선 당진’을 탄생시켰다는 새로운 사실이었다.
그 뒤 신한균 선생은 회령 도자기 재현에 몰두, 회령 도자기 되살리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 끝에 재현에 성공 ‘잃어버린 회령 도자기’라는 전시회는 물론 일본 NHK 방송에 회령 도자기 만드는 전 과정을 일본 전국에 생방송하게 된 쾌거를 이룬 것이다.
“도자기 중에서도 사발이야말로 일본에서 민족의 영속성을 유지하게 하고 우리민족의 삶을 윤택하게 해 주는 것”이라는 그의 말은 사발의 역사와 이론, 철학을 정립한 선구자로서 사기장의 아들로 태어난 그의 운명적인 삶들이 아버지의 이름값을 하기위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나이를 무색케 하는 그의 사발에 대한 지치지 않는 열정과 사기장에 대한 사랑은 우리 사발의 미래도 밝을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듯하다.
신한균 선생은 현재 양산 통도사 부근에서 작도 활동을 하면서 우리 도자기에 묻어 있는 일본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우리 옛그릇 이름 되찾기 운동’을 하고 있으며, 일본 학자가 왜곡한 우리 도자사와 미학자들이 왜곡한 도자기의 본질을 바로잡기 위해 일본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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