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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공화국… 상아탑이 썩고 있다
표절공화국… 상아탑이 썩고 있다
  • 승인 2007.01.08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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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취임한 명문대 총장이 논문 표절 의혹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지난 연말 고려대 신임총장 이필상 교수(경영학과)는 자신이 지도한 제자의 석사논문과 거의 유사한 내용의 논문 10여 편을 국내외 학술지에 게재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이 총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당시에는 관행이었다. 해당 논문의 아이디어는 원래 내가 제공한 것이라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본다”며 해명했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고려대는 이 사건과 관련, 이례적으로 ‘표절 가이드라인’ 제작 의지를 밝힌 상황이다. 국내 유명대학 총장도 비켜갈 수 없는 표절 논란,그 원인과 대책을 짚어본다.

지난달 28일에는 제자에게 논문 대필 및 표절을 지시한 지방 국립대교수가 경찰에 덜미를 잡혔고 최근에는 연세대 마광수 교수가 제자의 시를 표절, 자신의 시집에 실어 논란을 불렀다.

익명을 요구한 고려대의 한 교수는 “국내 교수들의 논문을 죄다 검토하면 표절 논란에서 자유로운 논문이 드물 것”이라며 “교수 전원이 양심 선언을 하지 않는 이상 근절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교수 임용·재임용·승진심사 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교수들의 연구실적이다.

문제는 심사 시 국내외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 ‘수’만 볼 뿐 논문의 내용인 ‘질’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풍토라는 지적이다.

한국외대 이장희 대외부총장은 “세계화 추세에 맞춘다며 논문이 과잉 공급되고 있지만 평가 기준이 ‘계량평가’에 집중돼 있다”며 “대학 나름의 아카데미즘을 심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교수들이 ‘양적으로만’ 연구실적 올리기에 혈안이 된 이유다. 이 과정에서 애꿎은 대학원 석·박사 과정 학생들의 학위 논문이 난도질 당하고 있다.

지도교수들이 제자의 학위 논문을 조금 손 본 뒤 자신의 이름을 ‘슬쩍’ 걸쳐서 ‘무임승차’한 논문을 공동저자 형식으로 교내외 학술지에 게재하는 경우는 그래도 양반이다. 하나의 논문을 두 편 이상으로 나눠 학술지에 중복 투고하는 ‘쪼개기’ 다른 사람의 논문과 뒤섞는 ‘짜깁기’를 하면 원래 논문의 취지는 찾아보기 힘들어진다.

이런 경향은 자연 계열보다 공동연구·공동논문 발표에 대한 학내 합의가 명확히 이뤄지지 않은 인문사회학 계열에서 특히 심하다.

자연계열에서는 학생들이 실제 연구를 하더라도 ‘큰 틀’을 잡아주는 지도교수의 역할을 중시하지만 인문계열에서는 실제 연구.조사를 하는 사람의 노력을 더 높이 사야 한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다.

물론 일부 학생들은 교수와 공동저자 형식을 취해야 권위있는 학술지에 논문이 게재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이용, 이에 적극 동조하기도 한다. 또 사제간 상하관계가 뿌리깊은 대학원의 도제 시스템 아래에서 스승을 거스르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학생들이 남의 논문을 그대로 베낀 리포트를 제출하는 일이 잦자 표절 논문 검색 프로그램이 개발됐다.

2001년 컨텐츠보안솔루션 개발업체 ‘디지캡’이 표벌적발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을 필두로, 지난 2004년 고려대도 표절검색 프로그램을 자체 개발해 학생들의 리포트 표절을 적발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요구되는 것은 교수들의 학문적 양심 재고다. 표절 논문 교수에게 배운 학생이 양심의 가책없이 자신의 제자 논문을 복제하는 일이 없으리란 보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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