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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발유값 국제 수준으로 낮춰야
휘발유값 국제 수준으로 낮춰야
  • 승인 2007.06.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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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발유 값이 줄기차게 오르고 있어 장기 불황으로 가뜩이나 고단한 국민의 살림살이가 더 팍팍해지고 있다.

게다가 작금의 고유가 현상은 불가피한 사정 때문이 아니라 국민의 고통을 ‘나 몰라라’하는 정부와 국내 정유업계의 합작품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어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정부는 세수 확보에만 혈안이 돼 있고 업계는 장삿속만 밝히는 통에 서민과 중산층의 등골만 휘는 꼴이다. 정부와 업계는 더 이상 국민의 고혈을 짜내지 말고 국내 유가를 당장 국제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휘발유, 액화천연가스(LPG), 경유 등 자동차 연료비는 올 들어 5월 말까지 7.8%가 올랐다. 전체 소비자물가상승률 1.9%의 4배가 넘는 급등세다.

유가의 급등세는 한국석유공사 집계로도 확인된다. 국내 주유소에서 판매되는 무연 보통 휘발유는 올 2월 첫째 주의 ℓ당 1,394.18원을 저점으로 16주 연속 올라 5월 다섯째 주에는 1,546.53원까지 상승하며 사상 최고가였던 지난해 8월 셋째 주의 1,548.01원에 근접했다.

정부와 업계는 유가 급등의 핑계를 국제석유시장에서 찾고 있다. 석유를 100% 수입에 의존하는 처지에서 국제 유가가 오르면 국내 유가도 덩달아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는 게 문제다.

올 2~5월까지 국내 휘발유의 세전 공장도가격은 ℓ당 462.76원에서 611.16원으로 32.1%나 폭등했다. 그러나 중동산 두바이유는 같은 기간에 16.5% 상승에 그쳤다. 국내 유가의 인상률이 국제 유가의 두 배에 달하는 이유를 정부와 업계는 소비자들에게 석명해야 한다. 무연 보통 휘발유에 해당하는 옥탄가 92 휘발유의 국제 시세도 5월 셋째 주에 고점을 찍은 뒤 2주 연속 내림세로 돌아섰으나 국내 휘발유 값은 끄떡없다.

말하자면 국제 유가가 오르면 재빨리 따라가지만 국제 유가 인하분을 국내 유가에 반영할 때에는 마냥 시간을 끄는 ‘얌체 상혼’의 전형인 셈이다. 복잡한 국내 석유류 유통구조도 고유가에 한몫 한다.

무연 보통 휘발유의 세후 공장도가격은 5월 다섯째 주에 ℓ당 4원이 떨어졌으나 소비자가격은 되레 4.75원이 올랐다. 국제 유가와 국내 공장도가격이 떨어져도 소비자가격은 계속 오르는 황당한 현상이 빚어지는 이유를 당국이 파악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건 더 큰 문제다. 원인을 모르니 해법이 나올 리 없다. 그저 “기름값은 자율화돼 있다”거나 “정확한 이유를 알기 어렵다”는 대책 없는 말만 되풀이하는 당국자들을 보면 화가 절로 솟구친다.

고유가 논쟁이 일자 휘발유, 경유 등 수입완제품의 관세율을 5%에서 3%로 낮추겠다는 ‘생색내기’식 정책도 한심하기는 매한가지다.

휘발유 값의 60% 안팎을 차지하는 유류세는 그냥 놔두고 국내 판매 비중이 2%도 안 되는 완제품의 관세율을 조금 포인트 내려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휘발유는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생필품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차를 운행해야 먹고 사는 서민이 부지기수인 터에 세금을 많이 매겨 휘발유 소비를 줄이려는 낡은 발상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세금이 많이 붙으면 국제 유가가 크게 올라도 국내 유가에 반영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아지므로 오히려 소비에 미치는 영향이 줄어든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유류세를 대폭 인하하는 게 마땅하다. 그리고 잘못된 석유류 유통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 한 정유회사의 제품만 팔도록 강제하는 폴 사인제와 수평거래금지제도를 폐지하거나 완화하고 석유선물시장을 개설하는 한편 완제품 수입을 확대하고 정유회사들의 담합 행위를 강력히 응징하는 등 국내 석유시장에 본격적인 경쟁을 도입해 소비자들이 가장 싼 값으로 휘발유를 공급받도록 유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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