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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 정치권 줄서기 모습 언짢다
학자들 정치권 줄서기 모습 언짢다
  • 승인 2007.07.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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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어느 구석에서 그 어떤 일을 하든지 ‘소신’껏 행동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누구라도 수긍하는 상식과 규칙, 규정에 의거해 소신을 지키는 사회 구성원이 많을수록 그 사회는 바르게 설 수 있다.

당장 눈 앞의 이익을 추구하느냐, 아니면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소신을 지키느냐는 전적으로 개인 의지에 달려 있다.

‘소신껏 일한다’는 게 사회나 조직에 당장은 불편함을 초래할 수도 있겠지만 멀리 본다면 투명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대통령선거를 코 앞에 두고 학자들의 정치권 줄서기 현상이 예전보다 더 두드러지는 듯하다.

현 정부가 학자 출신을 중용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정치권 진출을 희망하는 학자들이 급증해서 그런지 모르겠다.

하지만 명백한 점은 ‘폴리페서(polifessor)’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로 교수의 정치권 기웃거림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누구 캠프에는 수백 명의 폴리페서들이 문을 두드리고 있고 일부는 벌써 요직에 기용되기도 했다.

경쟁적으로 다른 캠프도 수백 명의 대학교수를 여러 가지 직책을 붙여 대선 가도에 동참하도록 하고 있다.

학자가 학문 이론을 실제에 접목시켜 보는 게 중요하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아무리 많은 공을 들여 배운 이론이라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면 그 이론은 죽은 이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국가나 조직의 발전을 위해 애써 많든 학문적 토대를 적용해 국가나 사회가 발전의 기틀을 다진다면 그야말로 학자로서는 더없이 기쁜 노릇일 게다. 하지만 학자의 길에는 다른 분야 종사자들과 마찬가지로 소신이라는 잣대가 따라다닌다.

흔히 떠도는 ‘학자적 양심’이니 하는 말도 결국은 소신을 강조한 것 아닌가.

소신이 편견과 편협한 사고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닐진대 그 소신을 지키려 노력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학자의 소신은 학문적 업적을 쌓는 것이다.

옳다고 판단되면 옳다고 말하는 것이다. 혹 부와 명예를 보장해 준다고 해서 ‘틀린 것을 맞다’고 하거나 없는 일을 있는 것처럼 꾸민다면 그는 소신을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것과 다름없다.

정치권을 기웃거리느라 후학들의 학문 연구에 지장을 준다면 그것은 학자의 태도가 아니다. 학문적 성과가 출중해 국가가 원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구태여 스스로 목을 쳐들고 두리번거릴 필요는 없다.

지금 대학사회에 필요한 학자의 소신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시급히 갖추는 일이다.

‘타 기관의 전임직을 겸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음에도 총장의 허가를 받으면 겸직이 가능하도록 돼 있는 규정이 있다면 이를 좀 더 명확히 손질해 학자가 소신을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수평가제를 더욱 철저히 시행해 학문 연구나 후학 지도에 소홀히 하는 학자를 교문 밖으로 내모는 일은 대학사회의 몫이다.

정치권에 진출할 때에는 사표를 제출했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올 때 교수, 학생이 참여하는 재임용 절차를 철저히 지키도록 하는 것도 바로 학자들이 소신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도구가 된다. ‘양다리’를 걸치도록 돼 있는 제도와 규칙, 규정을 외면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이것 아니면 저것’을 분명히 선택할 수 있도록 대학사회 스스로 어설프거나 충돌되는 규정을 정비한다면 소신껏 학문 연구에 몰두하는 학자들이 넘쳐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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