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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은 취재 현장에 있어야 한다
기자들은 취재 현장에 있어야 한다
  • 승인 2007.11.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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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언론의 칼날 대치가 좀처럼 완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정부 부처 출입기자들의 고난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기자들에게 발급된 기존의 청사출입증을 폐지하고 통합브리핑룸과 통합기사송고실에만 들어갈 수 있는 새 출입증을 강요하고 있으나 기자들은 이를 거부하고 민원인 출입증을 매일 발급받는 불편을 스스로 감수하고 있다. 그리고 근 한 달째 통합브리핑룸을 외면한 채 차가운 청사 로비 바닥을 고집하고 있다.

정부는 주말에 ‘바닥 기사송고실’을 기습 철거했으나 기자들이 주초에 임시로 복원하자 전원마저 끊어 버리는 등 연일 초강수다.

이 때문에 노트북을 사용할 수 없게 된 기자 가운데 일부는 인근 커피숍 등에서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명색이 국민의 알 권리를 대행한다는 기자들이 국민이 주인인 정부 청사에서 마치 잡상인 취급을 받는 꼴이다.

그러나 이제는 기자들이 왜 이처럼 처절하게 저항하는가를 정부가 한 번쯤 진솔하게 뒤돌아볼 때다. 그 동안 사회적으로 큰 쟁점이 부각될 때마다 진보와 보수, 또는 중도로 갈라져 서로 다른 논조를 주장하곤 하던 언론계가 이번만큼은 하나로 똘똘 뭉쳐 정부의 조치에 항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가 내세운 이른바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은 명칭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취재 봉쇄 내지 억압 방안’의 눈속임으로 국민의 알 권리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취재활동을 지원한다지만 실상은 극도로 제한하고 있으니 기자들이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기자는 모름지기 취재 현장에 있어야 한다. 언론의 자유는 정부가 시혜적으로 베푸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 수호 차원에서 반드시 보장돼야 하는 국민의 기본권에 속하며 취재의 자유가 없는 언론의 자유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기자들을 마치 무슨 가축이나 되는 것처럼 한 곳에 몰아넣고 정부가 불러 주는 것이나 받아쓰게 하는 통합브리핑룸을 취재 현장이라고 우긴다면 그야말로 지록위마에 다름 아니다.

참여정부는 출범 직후 기자가 공무원 사무실을 무시로 방문하면 업무에 지장이 있다며 사무실 출입을 막았으나 이젠 그것도 모자라 아예 기자와 공무원들을 격리시키겠다는 속셈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기자와 공무원을 떼어 놓으면 누구만 좋을 것인가는 삼척동자도 아는 뻔한 일이다.

정보공개법을 활용하라는 주장도 허망하기 짝이 없다.

기자가 얻고자 하는 정보를 특정해야 하는 등 정보 공개의 범위가 극히 제한돼 있는데다 법 규정이 허술해 정부가 원하면 얼마든지 공개를 거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공개법 제정 10여년이 지나도록 이를 활용해 기사를 쓴 예가 별로 없다는 사실은 허울뿐인 정보공개법의 실상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기자들이 죽치고 앉아 담합이나 하는 곳이 기자실이라는 시각도 있으나 그보다는 기자들이 서로 다양한 견해를 주고 받는 담론의 공간이라는 의미가 훨씬 크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언론사별로 모아 놓은 통합브리핑룸에서는 이런 기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정부는 기자들을 더 이상 잡상인 취급하지 말고 하루 빨리 취재 현장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기자들의 취재를 막기에 급급하기보다는 공무원들의 취재 응대 기피를 막을 실질적인 장치 마련과 정보공개법 보완, 내부고발자 보호 방안 강구 등 언론의 자유를 신장하는 데 골몰하는 게 현명한 정부의 마땅한 소임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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