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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과 정도 이탈한 ‘대권 3수’
원칙과 정도 이탈한 ‘대권 3수’
  • 승인 2007.11.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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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대권 3수’의 주사위를 던졌다. 이 전 총재가 오는 12월19일의 대선을 불과 42일 앞두고 한나라당을 탈당해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2002년 제16대 대선에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에게 57만여 표 차이로 패해 정계 은퇴를 선언한 지 4년10개월 만의 정치무대 복귀다.

나이가 72세인 그로서는 정치 인생을 건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그의 대선 출마로 한나라당과 우파 진영이 분열해 정권 교체에 실패하면 그는 ‘분열주의자’와 ‘기회주의자’라는 오명을 쓰고 정치 인생에 참담한 종언을 고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천신만고 끝에 집권에 성공한다면 집념의 승부사로 정치 인생의 화려한 재기를 맛볼 수 있다. 그는 지금 극과 극을 오가며 벼랑 끝에서 일생일대의 승부에 나섰다고 할 수 있다.

대선에 출마하고 말고는 순전히 이 전 총재의 자유의사에 달려 있다. 현행 법 상 아무런 문제도 없다.

한나라당 당적만 버리면 그의 출마가 선거법 상 하등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삶의 신조로 지켜온 원칙과 정도를 저버린 기회주의적 행위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이로써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대쪽’의 이미지를 스스로 저버렸다. 그가 정계에 입문해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받은 것은 이른바 ‘3김(三金)정치’로 대표되는 구(舊)시대 정치에 물린 국민에게 원칙과 법을 대쪽같이 지킨다는 참신함이 크게 대비됐기 때문이었다.

온갖 술수와 파당 정치로 점철된 골수 정치인이 아니라 올곧은 법관 출신으로 우리 정치판에 새 바람을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국민 사이에 적지 않았다.
그가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각각 1천여 만표를 얻은 것도 바로 그런 기대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씨 등 이른 바 ‘3김’은 비록 대통령과 총리를 역임하며 정권의 최정상에 섰지만 원칙과 정도를 지킨 정치인으로 평가받지는 못하고 있다.

김영삼씨는 야당에서 거대 여당 대표로 변신해 대통령이 됐고, 김대중씨는 정계 은퇴 선언을 번복하고 ‘대권 4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는가 하면, 김종필씨는 김영삼 정권과 김대중 정권을 오가며 권력 줄다리기로 당 대표와 총리직을 역임했던 정치인으로 우리 기억에 남아 있다.

그들 모두 ‘구국의 결단’을 내세워 자신들의 집권욕과 집념을 합리화했지만 그들의 행위는 ‘구국’보다는 ‘구권’쪽에 가까웠다. 이제 이회창씨도 무소속 출마를 계기로 원칙과 정도를 버리고 집권욕에 불탔던 일부 구 정치인의 반열에 들어섰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이 전 총재는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에서 “우리는 이번에 반드시 정권 교체를 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정말 정직하고 법과 원칙을 존중하는 지도자만이 국민의 신뢰를 얻고 국민의 힘을 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과연 이 전 총재의 출마 결심이 자신의 주장대로 법과 원칙을 존중한 지도자의 행위인지 묻고 싶다.

특히 자신이 만든 당에서 나와 무소속으로 출마한 게 그의 주장대로 ‘좌파 정권’종식을 위한 정권 교체의 바른 길인지 되묻고 싶다.

물론 그는 “만약 제가 선택한 길이 올바르지 않다는 국민적 판단이 분명해지면 저는 언제라도 국민의 뜻을 받들어 살신성인의 결단을 내릴 것”이라며 여백을 남겼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의 ‘대권 3수’는 평소 그가 지켜온 신조와 대의명분에 전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지적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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