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코 앞에 둔 시점이지만 선거판 바닥은 각 당의 총선 지망생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이 수상쩍다. ‘이명박 대세론’이 고착될 조짐을 보이면서부터다.
BBK 의혹에 대한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지지도가 50%에 육박하면서 정치판에 이상기류가 분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 후보는 내심 55% 득표를 목표로 고삐를 다잡고 있다고 한다. 선거 속성상 언제, 어떤 형식의 변수가 돌출해 ‘이명박 대세론’을 뒤흔들지 모르나 지금까지는 이 후보가 12월19일 선택의 날을 향해 순항하고 있는 듯 하다.
반이(反李) 세력에는 어떤 선택의 카드가 남아 있는 것일까.
무소속 이회창 후보는 최근 “반듯한 정당, 건전한 정당을 만들어 국가 대 개조의 밑거름이 되도록 할 것”이라며 대선 후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여기에는 충청권을 기반으로 하는 국민중심당을 포함한 일부 보수 진영이 가세할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이인제 후보는 한때 지분을 둘러싼 이견으로 좌초됐던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와의 후보 단일화 논의를 재개했다.
정 후보와의 단일화를 거부한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는 여권 대체세력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일련의 흐름은 내년 4.9 총선을 향한 행보라는 게 중론이다. 정 후보가 BBK 의혹을 걸어 특검제 도입과 수사검사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도 실상은 대선 이후를 염두에 둔 포석일 수 있다.
벌써부터 여의도 정가의 관심은 총선 쪽으로 옮겨가 있는 듯하다. 총선 구도와 공천 여부가 의원들의 최대 관심사라는 얘기다.
오죽하면 정 후보가 당 소속 의원들의 대선 무관심을 질타하며 “뛰어달라”고 독려하고 나섰겠는가.
현 상황대로라면 대선 이후의 정국은 이번에 출마한 후보를 중심으로 한 다자(多者) 정치축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 대(對) 반이(反李) 세력의 대립 구도가 그것이다. 이명박 후보의 55% 득표 욕심도 대선 압승의 여세를 총선으로 몰아가겠다는 의미가 없지 않아 보인다.
사정이 이렇다면 이번 대선은 참으로 희한하다. 후보 모두가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선 이후를 겨냥해 대선전을 펼치는 기형성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대선은 예선이고 총선이 본선인 셈이다. 유권자들도 어리둥절하기는 매한가지일 것이다.
가령 이회창 후보에게 표를 줄 경우 대선 후보로서의 이회창이 아니라 다음에 출현할 보수 정당을 위해 한표를 행사하는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대선을 통한 총선 대비는 전례없는 대선 왜곡이다. 물론 대선 출마가 꼭 당선을 목적으로 하는 것만은 아니다.
정치 철학이나 정책 비전을 유권자들에게 알리고 그에 대한 지지세를 확보해 국정에 직간접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나설 수 있다.
또는 한차례 대선에서 인지도를 높여 차기 대선에서 득을 보고자 할 수도 있다.
이처럼 여러 상황이 있을 수 있지만 아예 총선 지분을 노리고 대선에 임하는 것은 한표의 가치를 훼손하는 정치 꼼수에 다름 아니다.
대선-총선으로 이어지는 정치 일정의 불가피한 측면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대선의 본질이 왜곡돼선 안된다.
차기 지도자를 뽑는 국가 대사인 만큼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고 전력하는 당당한 후보가 박수 받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