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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大亂’ 수수방관만 할 건가
‘수능大亂’ 수수방관만 할 건가
  • 승인 2007.12.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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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학년도 정시모집이 20일부터 시작되는데도 수험생들은 지원 대학ㆍ학과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눈치작전이 극심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수능 성적이 점수가 아닌 9개 등급으로만 표시됐기 때문이다.

수리 가형(자연계)의 경우 난이도 조정 실패로 2점짜리 문제 한 개만 틀려도 2등급으로 떨어졌고 경쟁 학생보다 총점은 높지만 평균 등급이 낮게 나온 사례도 있다.

죽어라 공부한 수험생 입장에서는 수긍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 수험생은 수능 등급 분류 처분 무효 확인 소송을 냈으며 일각에서는 위헌 소송 제기 움직임도 있다.

‘수능 대란(大亂)’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예년처럼 원점수와 백분위, 표준점수로 수능 성적을 표시할 경우 1∼2점 차, 심지어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서열이 매겨지므로 살벌한 점수 경쟁이 불가피했다.

교육부는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일정 점수대의 학생이면 비슷한 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는 등급제를 도입했다.

점수보다는 학생의 잠재력과 소질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선발한다는 취지는 좋았다.

그런데 막상 채점하고 보니까 1등급 구분점수(커트라인)가 사실상 100점 만점인 영역이 나오는 등 여러 폐단이 발생했다.

한 입시전문교육업체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 수험생의 86%가 수능 등급제에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2004년 8월 교육혁신위원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65%가 반대했다.

당국이 등급제의 문제점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면 무능ㆍ무책임했다고밖에는 볼 수 없다.

정부만 나무랄 일도 아니다. 대학들은 마지못해 내신 실질 반영률을 높였으나 변별력을 이유로 내신 등급 간 점수를 크게 좁히는 방법으로 내신을 사실상 무력화했다.

반면 수능 등급 간 점수 차는 크게 벌려 수능 등급제 혼란을 부추겼고 일부 대학은 논술 변별력을 높인다며 점수를 더욱 세분화했다.

수능 등급제에 따른 혼란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됐던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막상 이사회를 열고도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현재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입시를 목전에 두고 있기 때문에 대교협이 현 시점에서 의견을 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아울러 수능 등급제 개선에 대한 정책 건의는 올해의 대입 정시 전형이 마무리되는 내년 1월 중순 이후로 미뤘다. 대책 없이 무책임하기는 교육부와 매일반이다.

교육부는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도입한 수능 등급제를 한 차례만 시행해 보고 폐지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고위 관계자는 ‘시행 초기의 과도기적 현상’이며 ‘점수제에서 등급제로 바뀌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일종의 금단 현상’이라고 말했다.

지금의 혼란이 일과성에 그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에 비춰 보면 너무 안이한 진단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하지만 등급제를 3년 전에 예고한 이상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교육부를 두둔해서가 아니다. “입시는 약속이기 때문에 예고한 대로 가야 혼란이 없다”는 이장무 대교협 회장(서울대 총장)의 발언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서둘러 보완책이 나와야 한다. 교육부와 대교협이 머리를 맞대고 등급 세분화나 수능 2차례 이상 시행, 문제은행식 출제 등을 진지하게 검토하는 게 바람직하다.

등급제의 혼란을 지금의 고1, 2학년까지 겪게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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