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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 속의 ‘브레이빅’은 없나
우리 마음 속의 ‘브레이빅’은 없나
  • 오태영
  • 승인 2011.07.27 1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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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태영 창원취재본부 부장
 노르웨이의 연쇄테러 사건을 계기로 유럽사회의 역주행이 관심을 끌고 있다.

 이번 테러사태는 비록 잔혹하고 엽기적이기까지 하나 일과성으로 치부할 수 없는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슬람권과 비이슬람권(보다 정확히는 기독교권)간의 해묵은 갈등이 모태라면 2000년대 이후 격화되고 있는 미국의 세계패권전략과 이슬람권의 이에대한 응전이 도화선이다. 그 출발점이라 볼 수 있는 9ㆍ11테러는 잠복해 있던 갈등을 수면위로 떠올린 직접적 계기가 됐다. 여기에다 2004년 스페인 마드리드역 테러, 2005년 영국 런던의 지하철 테러와 프랑스의 무슬림 폭동은 이슬람권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던 극우세력은 물론 전 유럽사회에 이슬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한 계기가 됐다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세계경제위기와 유럽권의 영향력 쇠퇴, 점증하는 무슬림 인구도 유럽사회의 극우ㆍ보수적 분위기를 강화시키고 있다. 일자리를 찾아 유럽으로 넘어오는 무슬림 인구가 늘어나면서 ‘우리 일자리를 위협하는 무슬림을 위해 우리(백인들)가 번 돈으로 무슬림을 더 이상 먹여살릴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다양하게 진행되던 다문화정책이 후퇴하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2004년 공립학교에서 무슬림 여학생들의 히잡 착용을 금지했던 프랑스는 지난 4월 공공장소에서 무슬림여성의 니캅과 부르카 착용을 금지하는 것으로 무슬림에 대한 제한을 확대했다. 벨기에는 최근 프랑스를 본받아 시행에 들어갔다. 2009년 말 스위스에선 이슬람 사원 첨탑 금지안이 국민투표를 통과했다.

 유럽정치지도자들의 다문화포기를 시사하는 발언도 이어지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해 10월 “다문화사회를 건설해 공존하자는 접근법은 완전히 실패했다”고 했다. 독일 중앙은행 이사였던 틸로 자라친은 저서 ‘독일이 자멸하고 있다’에서 “이슬람 이민자들이 독일사회에 동화하지 못한 데는 사회적 배경뿐만아니라 유전적 요인이 있다”며 인종 차별적 발언까지 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지난 2월 “영국적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무슬림단체에 대한 정부지원을 삭감하겠다”고 발표했다. 특히 2007년 무슬림 폭동을 딛고 톨레랑스(이질적 문화와 민족에 대한 관용)를 기치로 집권했던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우리는 다양한 공동체가 공존하는 사회를 원치 않는다”고 보수회귀를 선언했다.

 정치지도자들의 이러한 발언에는 극우세력의 득세가 이어지고 있는 유럽세계의 분위기가 배경이 되고 있다. 유럽각국에서 극우정당들이 크게 약진하면서 이념을 달리하던 정치지도자들이 현실을 받아들인 것이다. 프랑스 공직사회에서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대표가 26%의 지지율로 야당 사회당 대선 주자인 프랑수아 올랑드 (24%) 전 대표와 사르코지(16%) 대통령보다 높게 나타날 정도로 프랑스의 오른쪽 방향전환이 강하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 전개되고 있는 양상을 보면 갈등의 책임을 따지는 일은 쓸데 없는 짓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우리나라로서는 꼭 짚어봐야할 대목이다. 2004년과 2005년 스페인 마드리드역 테러사건과 2005년 영국 런던의 지하철 테러와 프랑스 무슬림 폭동은 모두 유럽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무슬림 2세들이 벌였다.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죽어라 열심히 일해도 나아지지 않는 열악한 환경에 짓눌리고, 경원시하는 시선을 받아온 무슬림들이 정당한 권리와 대우에 눈 뜬 것이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무슬림의 유럽이동은 유럽이 원해서 이뤄졌던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1970년대부터 부족한 인력을 메우기위해 정책적으로 무슬림을 받아들였던 유럽이 글로벌 경제위기와 성장지체가 계속되면서 화살을 무슬림으로 돌리는 형국이다.

 유럽의 무슬림인구는 전체의 8% 수준으로 이주노동자 100만 명을 포함 120만 명의 외국인이 살고 있는 우리나라보다는 월등히 비중이 높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외국인과의 문화적 갈등이 사회적 문제화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현 추세대로 라면 외국인 인구 비중이 늘어날 수 밖에 없고 갈등도 지금보다는 훨씬 커질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절대적 특정종교에 대한 역사문화적 경험이 없고 종교에 대해서는 세계적으로도 관대한 편이다. 그러나 민족적 편견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갈등의 소지는 적지 않다.

 우리 경제가 침체되고 장기적 불황에 시달린다면 사정은 달라질 수 있다. 이질적 문화와 민족에 대한 편협성이 고개를 들 수 있다. 유럽처럼 되지말라는 법은 없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도 보기드문 매우 전향적인 다문화정책을 펴고 있다. 그러나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에서도 이질적 문화와 인종에 관용적인가는 다른 문제다. 우리에게는 제2의 브레이빅이 없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필요할 때는 ‘공존’를 외치다가 필요성이 떨어지면 ‘공존을 원치 않는다’고 말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되물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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