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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이야기
세금 이야기
  • 강한균
  • 승인 2013.10.09 2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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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한균 인제대학교 국제경상학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상에 세금을 많이 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제정 러시아의 피터 대제는 귀족의 구레나룻에 세금을 부과했고, 17세기 영국의 초대 대통령 월폴은 귀족의 호화주택에 세금을 부과했다. 처음에는 호화주택의 기준을 집안의 벽난로 수로 정했고 나중에는 창문의 개수로 정했다. 한편 프랑스에서는 창문의 수 대신 창문의 폭이 넓을수록 더 많은 세금을 부과했다. 심지어 유럽 봉건시대에는 초야세(bridal night tax)를 만들기도 했다. 이는 영주가 영지의 처녀와 초야를 함께할 권리를 가졌는데 만약 처녀가 잠자리를 피하기를 원한다면 대신 세금을 납부해야만 했다. 1773년 영국이 식민지국인 미국으로의 홍차 수출에 고율의 높은 세금 부과로 촉발된 보스턴 차사건은 미국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덴마크는 2011년 고칼로리 식품에 대해 비만세를 부과했다가 일년 만에 철폐했다. 프랑스 최대 부자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뷔통 회장은 부자세에 반발해 벨기에 시민권 신청을 하려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시민권 신청을 최근 철회했다. 이러한 세금에 대해서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세금을 피할 수 있는 방법도 없지는 않다는 것이다. 러시아 귀족들은 자신들 자존심의 상징인 구레나룻을 미련없이 잘라 버렸고, 영국주택의 창문 수는 줄어들었다. 또 프랑스 건축양식은 창문의 폭이 좁고 길이는 길게 변했고 덴마크에서는 비만세로 비싸진 국내산 제품을 기피하고 독일 국경을 넘나들면서 식료품을 구입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지하경제 양성화 차원에서 여종업원의 봉사료를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한다고 하자 유흥주점 주인들이 시위와 분신으로 맞대응하는 등 완강한 조세저항을 보였다. 한편 청와대 경제수석은 연봉 3천450만 원 초과 급여소득자에게 년 16만 원의 추가 세액부담은 거위털을 뽑는 정도라는 루이 14세 재무상인 콜베르의 징세론을 들먹였다가 호된 여론의 비난을 면치 못했다. 결국 정부 당국이 아무리 세금을 거둬들이고 싶어도 납세자가 수긍하지 않는다면 소기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납세자가 세금을 더 내는 증세에 동의하는 데는 두 가지 전제가 따른다. 첫째는 내가 낸 세금이 적정하고 정당하게 쓰여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낸 세금이 정말 어려운 사람들의 복지재원으로 바람직하게 사용되고 있는지. 나보다 잘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되지는 않는지. 나의 급여는 수년째 동결돼 있는데 군인을 포함한 공무원들의 급여 인상에 사용되는 것은 아닌지. 세수의 누수와 세금 사각지대는 없는지. 만약 이런 생각이 조금이라도 든다면 누구든 단돈 천원이라도 더 내기가 아까운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둘째는 세금 징수가 공정하고 공평하게 이뤄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나보다 형편이 좋은 사람이 세금을 보다 적게 내지는 않는지. 세무 당국의 세무조사는 공정한지. 세무공무원과 납세자 간의 유착과 담합은 없는지. 세무당국이 정권과 가까운 납세 주체에게 무력하지는 않는지. 수시로 불거지는 전ㆍ현직 국세청 고위간부의 수뢰와 구속사건을 보면서 느끼는 납세자의 불신 역시 납세자의 납세 의욕을 떨어뜨리고 있다.

 지난달 정부는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월 20만 원을 주겠다던 기초연금의 대선 공약을 뒤집고 소득 하위 70%를 대상으로 국민연금 가입 기간과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지급한다고 발표했다. 야당은 표를 얻기 위한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공격했고 여당은 제도를 다소 조정한 것뿐이라고 변명한다.

 정부가 성공적인 조세정책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증세 없는 복지라는 현 정부의 대선용 정책 기조를 과감히 수정하고 증세 없는 복지정책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솔직하게 국민들에게 고백해야 한다. 그리고 신뢰감을 줘야만 한다. 나아가 정부는 예산 낭비를 줄이고 방만한 공공부문을 개혁해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보일 때만이 대국민 증세의 설득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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