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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화 상륙, 영토침략으로 변질되나
일본문화 상륙, 영토침략으로 변질되나
  • 송종복
  • 승인 2013.10.28 2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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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사)경남향토사 수석부회장
 원자폭탄을 맞은 일본이 귀국할 때 남긴 말 중 ‘미국한테 믿지 말고 소련한테 속지 마라 일본사람 일어나니 조선사람 조심하라’는 것이 새삼 뇌리에 떠오른다. 기어이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우기다가 급기야 ‘유튜브’에 동영상까지 제작해 세계만방에 퍼트리고 있다. 필자는 경남 광복회 주관아래 모 고교에서 ‘민족정기와 국위선양’이란 주제로 특강을 했다. 독도는 누구 땅이냐 물으니 “우리 땅이다”라는 막연한 답변만 나왔다. 아니 구체적으로 말하라 하니 “세종대왕실록지리지 50페이지 셋째 줄에 있다”고 했다. 너무 감동해 극찬한 일이 있었다. 60년대 초 대학시절에는 일본어학과가 없었으며 길거리에도 일본어학원이 아예 없었다. 65년 한일회담 후 부터는 서서히 일본문화가 침투하게 되자 최근에는 우후죽순처럼 일본어학원, 일본영화, 일본식당, 일본어노래방, 대학까지 일본어학과가 들어서 이 나라가 온통 종속국이 아닌가 느낌마저 들고 있다.

 문화면에 있어 광복 후 53(1998)년 만에 다시 일본영화 기타노다케시의 ‘하나비(불꽃놀이)’와 이마무라소헤이의 ‘우나기(뱀장어)’가 상륙하고, 이어서 ‘가게무샤(影無者)’, ‘라쇼몽(羅生門)’ 등이 들어왔다. 따라서 한국에 문화의 빗장을 풀고 본격적으로 가요, 만화, 심지어는 저질적 외설 폭력문화까지 한국에 상륙했다. 반면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에 정부에서는 일본문화의 개방이 단계적이며 상호주의 원칙 아래 건전한 문화교류, 민간차원의 교류 추진을 내세웠다. 또한 개방의 기본방향에 대해서는 ‘과거 한ㆍ일 양국 간 불행한 역사와의 관계가 적은 분야부터 그리고 문화적 가치가 높은 분야까지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개방의 성과가 나타나도록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설득했다. 이런 혜택을 받은 일본은 또한 정치면에서 입에 거품을 물고 사과를 연발했다.

 1990.4.30 한ㆍ일 외무장관 회담 시에 나카야마 장관은 “2차 대전은 일본군국주의의 침략전쟁이었다. 한국국민의 심중에 응어리가 있다면 이를 해소하기 위해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1992.1.16 미야자와 총리의 방한 때에 “과거의 고통이 일본의 행위로 생긴 것임을 시인하면서 반성과 사과를 밝힌다”고 했고, 1993.11.6 일본 호소가와 총리 방한(경주)에서 “과거 우리의 식민지 지배시절에 한반도의 여러분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뺏거나 타국 언어를 강제로 사용케 하고 창씨개명이라는 이상한 일을 강제하고 종군위안부 노동자의 강제연행 등 각종 문제가 있었다. 이러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강요한데 대해 가해자로서 우리가 한 일에 대해 깊이 반성하며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사과를 드리는 바이다”고 하며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 자행했던 잘못을 사례를 들어가며 고통을 강요당한데 대해 가해자로서 깊이 반성하며 사죄했다.

 이상의 1965년 시이나 외무장관에서부터 1992.1.6 미야자와 총리까지 겨우 ‘사과의 뜻’에 이르렀다. 이것도 한국의 요구에 의해 최소한 우리와의 협의를 거쳐 끌러낸 답변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일본도 사회당의 총리가 들어선 후의 한일 정상회담은 순수했고 또한 호소카와의 이날 발언은 우리의 요구나 정부 간의 협상의 산물이 아니라 일본정치의 신세대가 적극적인 미래를 위해 스스로 일으켜 낸 과거사에 대한 인식과 사과라는 점에서 양국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같이 한때는 서로가 이해ㆍ협력하고, 진실한 이웃의 동반자로 성장했는데 그 저의에는 일본문화의 상륙을 위해 거짓임이 이제 밝혀졌다. 따라서 격언에 일본인은 “교활하기가 여우 같고, 간사하기가 살쾡이 같다”라는 말이 재삼 생각이 난다. 그들은 우선 총구멍이라 할 수 있는 독도를 먼저 삼키고자 온갖 수단ㆍ방법을 다 써가며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나 모른다. 일본은 한국어를 배우려 하지 않는다. 그 반면 한국은 미치듯이 일본어를 못 배워 환장한다. 뿐만 아니라 모 문화원은 교류를 한답시고 혈세를 천만 원이나 펴주니 좀 생각해 볼 문제라고 아니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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