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9 03:05 (월)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3.11.19 22: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추억의 삼천포 시절(13)
 죤 왕자는 마귀를 죽여주겠다고 하자 곰은 대신 마귀를 처치하려고 길을 떠나는 죤 왕자에게 곰털 세 가닥을 주면서 필요할 때 쓰라고 했다.

 그리고 바다로 가서 고래에게서 같은 방법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요긴하게 쓰라며 고래수염 세 가닥을 얻어 길을 떠났다.

 죤 왕자는 곧바로 마귀가 사는 바다 가운데 섬으로 갔다. 마귀의 섬으로 들어간 죤 왕자는 그곳에서 마귀를 만나 혈투가 벌어지고 위기 때마다 독수리의 깃털, 곰의 털, 고래의 수염을 이용해 마귀를 무찌른다.

 그리고 독수리와 곰 그리고 고래는 다시 원래의 왕자로 돌아오게 됐다. 이후 그 왕자들은 누나들을 데리고 죤 왕자의 왕국으로 돌아와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다.

 이런 내용의 ‘죤 왕자의 모험’은 작가 미상이고 반 만화체의 내용으로 삽화가 곁들인 글이 풍부한 만화로 어린이들에게 큰 꿈과 희망을 심어준 만화책이었다.

 9. 거지 이야기

 이제 책 소개는 잠시 접고 다시 나의 이야기로 돌려 보겠다.

 그 당시는 우리 동네에 거지들이 많았다. 2013년도 거지와 1950년대 거지들은 다른 게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요즈음 거지들은 돈을 구걸하지만 그때의 거지들은 밥을 구걸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요즈음 거지들은 일하기 싫어서, 즉 편한 거지 생활이 좋아서 하는 것이고 그 당시 거지들은 동란으로 가족이나 재산을 다 잃고 먹고 잘 곳이 없어 그야말로 어쩔 수 없이 내몰린 상태에서 거지 생활을 했다.

 우리 집의 방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큰길에서 점포로 통해 들어가는 길이 있고 또 하나는 집 옆에 골목이 있는데 이 골목을 통해 집 뒤쪽 마당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있었다. 이 골목은 우리 집에서 끝이 나니 사실상 우리 집으로 가는 전용 골목길이었다. 그러니 사용하는 사람은 우리 식구와 옆집의 김일이 식구 이렇게 두 식구만 사용하기 때문에 늘 인적이 없는 곳이었다.

 당시 우리 집 마당에는 마루가 있고 마루를 통해 방으로 들어가게 돼 있었다. 우리 식구들은 겨울 외에는 식사를 이 마루에서 하고는 했는데, 식사 시간이면 어떻게 알고 오는지 늘 거지들이 1명에서 2명 어떤 때는 3명까지 함께 밥을 얻으러 오고는 했다.

 어머니는 인정이 많으셔서 큰 그릇에 거지들에게 줄 밥까지 따로 담아 놓았다. 그래서 한 거지가 오면 그 그릇의 반쯤 퍼주고, 또 다른 거지가 오면 나머지 밥을 퍼주었다.

 어느 하루는 식사하는데 거지 하나가 와서 밥을 얻어가고 1분도 안 돼서 또 다른 거지가 와서 얻어 가고, 또 이어 또 다른 거지가 밥 얻으러 오는게 아닌가.

 그래서 나는 좀 이상해서 밥을 먹다 말고 대문으로 가서 골목을 쳐다봤더니 거지들이 아예 네다섯 명이 몰려 앉아 남의 집에서 얻은 밥이랑 우리 집에서 얻은 밥이랑 끄집어 내놓고 맛있게 먹고 있었다.

 거지들은 인적이 드문 우리 골목을 택해 아예 밥상을 차린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큰 소리로 “엄마 거지들이 살림 차렸어”라고 큰 소리로 말을 했더니 거지들이 후다탁 깡통들을 챙겨서 도망을 가버렸다.

 그러나 그렇게 극성을 부리던 거지들도 얼마 안 가서 하나둘씩 사라졌다. 어떤 거지 형은 내가 이웃의 철공소에 볼일이 있어 갔더니 아예 그곳에서 취직해 일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일하던 거지 형은 나를 알아보고는 슬며시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나도 따라서 웃음으로 인사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어려서 취직을 못 하는 어린 거지들은 새 동네 언덕에 세워진 삼천포 고아원으로 다 들어가게 됐다. 이 고아원에는 원생이 이백 명이나 될 정도로 많이 모였고 나중에 이들은 이곳에서 학교도 다니게 됐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