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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살고 얼마나 행복한가
얼마나 살고 얼마나 행복한가
  • 권우상
  • 승인 2013.12.01 2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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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우상 명리학자ㆍ역사소설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조그만 미물이라도 유일한 존재로 생기(生起)한 것이 아니라 서로 상관관계의 세력이 다하면 그 존재의 모양을 바꾸는 것이다. 그 존재의 모양을 바꿨다고 해 그 존재를 구성한 요소마저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요소로 환원했다가 그 요소가 또다시 세력이 생기면 앞서의 존재로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원인과 조건 그리고 결과가 서로 서로 무한히 연속된 세력을 갖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어떤 절대자가 무엇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결합의 원리가 미묘하게 작용하는 것을 연기의 세력이라고 한다.

 인간은 괴로움을 벗어나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앞에는 괴로움이 앞서고 있다. 어떤 때는 이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했는데 불행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구름처럼 물처럼 유유자적(悠悠自適)하게 살아가야 한다.

 “내 마음 나도 모른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 사실 마음의 심층구조를 모른다고 하면 이해할 수 있어도 마음의 현 실태를 자기 스스로 파악하지 아니하고 산다면 그것은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하루하루 살면서 마음의 행로를 지켜보면서 살아야 한다. 마음의 길이 우리 생활을 빛나게 하는 길이다. 내 마음을 내가 알고 살아야 한다. 내가 나를 모르면 누가 알 것인가.

 종교는 우리들에게 자기 굴레를 바르게 인식해 오늘과 내일을 참답게 살 수 있는 철학을 주고 있는 문화의식의 지침으로 우리에게 항상 무한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 자연의 이치를 배우고 살아가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올바른 마음, 깨끗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마음이란 무엇인가. 생각의 고향이다. 생각을 이것저것 많이 하는 사람은 마음이 어지럽게 된다.

 인간의 육신은 유한한 것이다. 자기의 목숨을 오래도록 살리고 싶은 것은 진시황만이 가진 욕심이 아니라 보통 사람도 모두가 동일한 생각을 하고 있다. 무한한 생명이 무엇인가 반문하면서 사는 사람도 있다. 무한한 것은 ‘참다움’ 밖에 없다. 참다움이란 무욕의 생활임과 동시에 일체를 평등하게 보는 마음이다.

 우리의 마음을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며 자기 본위로 살려는 의지도 항상 다퉈 경쟁하려 하고 또한 마음을 밝히려는 공부는 하지 않고 하찮은 지식으로써 자기만족의 울타리를 쳐놓고 사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로 사는 사람은 유한적인 쾌락을 맛볼지는 모르나 청정하고 무구한 삶의 경지를 체감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생각을 순일하게 해맑은 것으로 가다듬어야 한다. 생각이 단순하게 되면 마음은 평온하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과 평화를 갈망한다. 그러나 그 행복과 평화는 가만히 앉아 있는데 누가 안겨다 주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앞장서서 평화와 행복을 개척하고 창조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인간이 지켜야 할 근본으로 사랑하고 신뢰하며 순결하고 진실한 삶을 지혜롭게 살아간다면 그리하며 모두가 믿고 사랑하며 도와주고 산다면 행복과 평화는 바로 그곳에서 성취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모두 마음의 길을 우주 가득히 열어 놓고 대립적인 고정관념을 불식하고 ‘너와 나’가 탕탕무애, 자재무애한 마음의 공간에서 질시와 반목을 소멸한 참다운 자유 속에서 살 수 있는 지혜의 길을 넓히면서 살아보자. 인간이 살면 얼마나 살고, 인간이 행복하면 그 행복이 얼마나 갈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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