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09:25 (일)
만델라 반이라도 닮은 정치인 없나
만델라 반이라도 닮은 정치인 없나
  • 오태영 기자
  • 승인 2013.12.08 20: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오태영 사회부 부장
 “사랑해요, 타타 마디바.” 나라와 인종을 초월해 온 지구촌이 넬슨 만델라의 서거를 애도하고 있다. 그가 이룬 평화와 화해, 용서의 정신, 겸손의 태도는 남북대치 상황속에서 이념적 계층적 갈등을 반복하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결코 작지 않다.

 그는 27년간 옥살이를 하고 교도소 문을 나서면서 “증오를 털어버리지 않고서는 자유의 몸이 된다고 한들 영혼은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을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출소 후 케이프타운 시청 발코니 연설에서는 “친구들, 동지 그리고 남아공 국민여러분 평화와 민주주의 그리고 모두를 위한 자유의 이름으로 인사를 드린다. 나는 여러분 앞에 선지자가 아니라 여러분의 천한 종으로 서 있다. 당신들의 지칠 줄 모르고 영웅적인 희생 덕분에 내가 오늘 여기 서 있게 됐다. 그러므로 나 남은 내 인생을 여러분의 손에 맡긴다”고 했다.

 그는 원래 우리가 알던 것처럼 평화와 화해의 아이콘만은 아니었다. 젊은 시절 흑백차별정책에 대항해 비폭력 운동을 벌이다가 1960년 샤프빌 흑인대학살 사건을 계기로 무장투쟁으로 전환하기도 했다. “나는 일생동안 아프리카인의 투쟁에 헌신해 왔다. 모든 사람이 조화롭고 평등한 기회를 갖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이상을 간직해 왔다. 필요하다면 그 소망을 위해 죽을 준비가 돼 있다” 1964년 내란혐의로 재판을 받을 당시 46세 때의 말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열혈 이상주의자의 면모가 여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던 그는 27년간의 고문과 채석장 강제노역이라는 혹독한 감옥생활에서 새롭게 태어나게 된다. “난 결코 말을 가볍게 하지 않는다. 27년간의 옥살이가 내게 준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고독의 침묵을 통해 말이 얼마나 귀중한 것이고 말이 얼마나 사람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지 알게 됐다는 것이다”, “젊었을 때는 아주 급진적이고 모든 사람과 싸우려고 했다. 그러나 (출옥 후에는) 더 이상 대중을 선동하는 연설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변화에 대해 그는 오프라 윈프리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감옥에 있지 않았다면 인생의 가장 어려운 과제, 즉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일을 달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감옥에 앉아서 생각할 기회는 바깥세상에서 가질 수 없는 기회였다”고 했다.

 그의 이런 정신은 대통령이 되고 난 후 유감없이 발휘됐다. 강경파의 반발을 물리치고 직전 대통령을 부통령으로 삼아 흑백연합정부를 구성했다. 진실화해위원회를 출범시켜 잘못을 고백한 백인은 물론 그렇지 않았던 백인마저도 처벌보다는 용서를 택했다. 피의 내란을 우려한 조치였다. 측근으로부터 종신 대통령직을 제안받고도 거절했다.

 장남이 에이즈로 사망했다는 사실도 “에이즈 감염 사실을 공개하는 것만이 에이즈를 결핵이나 암처럼 보통병으로 느끼게 할 수 있다”고 말하며 기꺼이 털어놨다. 자신과 가족의 명예보다는 인류애를 먼저 생각한 것이다.

 그의 서거로 가장 궁금한 것은 우리 정치권은 그의 삶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하는 것이다. 남아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문제로 원수 대하듯 하는 정치권이 부끄러운 자화상을 알기나 하는지 궁금하다. 입으로는 정의, 평화, 민주를 외치며 반정의, 반평화, 반민주적 행태를 보이는 세력들은 또 무엇을 느꼈는지 참으로 알고 싶다.

 진영논리에 갇혀, 정치적 이해관계에 매몰돼 더 큰 것, 진실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는 둔감한 정치인들에게 넬슨 만델라의 죽음이 반성하는 계기로 작용하기를 기대하고 싶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백인마저도 화해라는 이름으로 껴안고 정치적 이해보다는 평화롭고 자유로운 사회라는 이상을 구현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넬슨 만델라가 우리 정치인들과 사회운동 세력들에게 훌륭한 멘토가 될 수는 없을까.

 아무런 교훈을 받지 못한다면 정치인의 교도소 수감생활 의무조항을 만드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넬슨 만델라의 반만이라도 닮은 정치인을 바라는 것이 그토록 지나친 욕심인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