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蕩平策(탕평책)
蕩平策(탕평책)
  • 송종복
  • 승인 2014.02.06 03: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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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蕩:탕 - 방탕할, 平:평 - 평평할, 策:책 - 꾀

 영조가 파별싸움을 없애기 위해 여러 당에서 인재를 골고루 뽑아 탕탕평평을 기하는 것으로,정치세력에 균형을 꾀한 불편부당의 정책을 말한다.

 탕평(蕩平)은 <서경(書經)> 홍범구주(洪範九疇) 가운데 5조인 황극설(皇極設)의 무편무당왕도탕탕(無偏無黨王道蕩蕩), 무당무편왕도평평(無黨無偏王道平平)에서 ‘탕평’이란 말이 나왔다. 또한 송나라 주자(朱子)의 붕당관(朋黨觀)을 피력한 <여유승상서(與留丞相書)>에서 붕당 간 논쟁의 시비(是非)를 명변(明辨)함에 의한 조정의 탕평을 말하였다. 따라서 ‘탕평’이라는 말은 특정 시대에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인군정치의 지공무사(至公無私)를 강조하는 보편적인 의미로 쓰여 왔다. 이를 조선 후기 영조(英祖)가 당쟁의 파벌을 해소하기 위해 당파간의 정치세력에 균형을 꾀한 불편부당(不偏不黨)의 정책을 사용하였다.

 조선 후기 정치인끼리 서로 무리를 지어 편을 갈라 집권에만 혈안이 되었지 백성들의 생계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그런 정치 무리를 ‘붕당’(오늘날에는 정당)이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다른 편을 서로 인정해 주며 사이좋게 정치를 하다가, 시간이 지나자 상대방에 대한 올바른 비판은 사라지고, 점차 모함이나 부정적인 비판으로 바뀌면서 붕당간의 정치적 싸움이 치열하였다. 이때 영조는 편을 갈라 자기들만의 이익을 좇는 상황이 조선을 망하게 한다고 생각하고, 모든 당(黨)이 싸우지 않기 위하여 정치에 골고루 인재를 등용하는 불편부당(不偏不黨)의 탕평책(蕩平策)을 사용하였다. 이로 인하여 여러 당파 중 능력 있는 인물을 골고루 뽑아 개혁정치를 이루어 조선의 르네상스(Renaissance) 일으켰다.

 그 후 파벌싸움에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 속에 8일 동안 가두어 굶어 죽게 하여 불행한 역사가 되었다. 아버지의 처참한 죽음을 지켜 본 정조는 할아버지(영조)의 뜻을 받아 그 침실에 탕탕평평실(蕩蕩平平室)이라는 편액을 걸고 ‘백성에 의한(By), 백성을 위한(For) 백성의 정치(Of)’,를 하여 요순시대의 버금가는 한국의 인문주의를 펴서 사회경제의 발전과 안정이 증진되었다. 또한 신문고 제도를 부활하고, 왕이 직접 억울한 백성을 챙기고, 상언(上言)과 격쟁(擊錚)을 시행하여 태평성세가 되었다.

 지금은 어떤가? 며칠 전 박근혜 대통령께서 ‘고위직이 백성들을 안하무인격인 막말을 그대로 둘 수 없다’고 하며, 아울러 ‘민생을 괴롭히는 행정은 일체 용납하지 않겠다’고 하니 우선 마음이 든든하다. 이로 보아 영조가 못다 한 탕평책을 손자인 정조가 시행하여 조선의 르네상스(Renaissance)를 이루듯이, 박정희 대통령이 백성을 위해 ‘잘살아 보자는 새마을운동’이 다시 이 땅에 울려 펴져 신갑오경장(新甲午更張)으로, ‘인사가 만사’라는 대탕평책(大蕩平策)으로써, 1월에는 공무원의, 2월에는 교육자의 대규모 인사이동에 후유증 없는 대탕평(大蕩平) 인사가 되기를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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