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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발따라 '겨울 울릉도 Ⅱ'
쪽빛 바다 품은 발걸음마다 ‘환희’
2015년 03월 17일 (화)
김봉조 7618700@kndaily.com
   
눈길 내수전서 석포 3시간30분
심설 도동서 성인봉 왕복 9㎞
옛길 같이 포근한 주민 따뜻한 정

 지난 2월 27일 기사에 이어 겨울 설국(雪國) 환상 울릉도 트레일을 이어보자. 셋째 날, 동해를 거쳐 온 눈구름이 밤새 지칠 줄 모르고 주먹만 한 함박눈을 퍼 붙더니, 날이 밝으면서 가벼운 솜털로 나부끼고, 먼 바다에서 간간이 햇살도 비친다. 당초 성인봉을 오르려 했던 계획은 심설(深雪) 속에 무리라는 판단에 울릉도의 숨은 옛길을 찾아 나서기로 의기투합 한다. 울릉군에서 조성한 둘레길 중에 가장 아름답다는 내수전에서 석포까지 미답의 눈길, 약 8㎞ 구간을 보둠으로 나선다.

 저동 버스종점을 지나 몽돌해변이 있는 내수전 마을이 트레일의 시작점이다. 내수전 전망대 입구까지는 차량 통행이 가능한 차로다. 약하게 내리던 눈발도 물러가고 울릉도를 덮고 있던 눈구름도 차츰 가볍게 벗겨진다. 내수전 약수터 표지를 지나 눈 덮인 오르막길을 약 30분 오르니 내수전 전망대 주차장이다. 석포로 이어지는 옛길을 미리보고 먼저 전망대로 향한다. 전망대로 향하는 트랙은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이 진행을 더디게 한다. 트랙에는 동백나무와 소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순백의 눈꽃(雪花)이 장관을 연출한다.

 주차장에서 400m 오른 내수전 일출 전망대에 닿으니 바다는 수평선 띄우고, 북서쪽 발아래 대섬 죽도, 깍새섬 관음도, 섬목 선착장이 화려한 시야를 채운다. 뒤돌아보니 행남 등대에서 시작한 저동항 방파제가 촛대암을 따라 등대를 마주 띄우고 미항(美港)을 담고 있다. 밤이면 오징어배로 불야성을 이루는 저도 어화(漁火)와 동해의 찬란한 일출을 상상하며 석포로 향하는 옛길로 발길을 옮긴다. 울릉둘레길 조성사업 기념비를 지나 내리막을 500여m 진행하니 우측 비탈에 안전 로프가 설치된 좁은 길이 열린다. 곳곳에 울릉도의 자생식물과 토양지질을 해설해주는 안내판에서 배움을 얻는다.

 내수전 전망대 주차장에서 1.3㎞ 이동하면 정매화골 쉼터에 닿는다. 작은 개울을 끼고 있는 이곳은 ‘정매화’란 사람이 살던 외딴집으로 1962부터 19년 동안 이효영 씨 부부가 정착해 살면서 폭설과 폭풍우속에 조난당한 사람 300여 명을 구한 미담이 깃든 곳이다. 정매화골 쉼터를 뒤로하고 좁은 길을 굽어 돌 때 쯤 우측 와달리로 내려서는 입구는 출입금지 표지판이 막고 있다. 오르막길을 따라 옮기는 발걸음이 깊은 눈에 버무려져 무거울 때 쯤 산중에 설치된 울릉읍과 북면의 경계 지점 이정표가 이채로운 쉼터를 내려놓아 잠시 쉬어가게 한다.

 북면으로 접어들면서 트랙은 완만하게 이어지고 습설(濕雪)이 발목을 넘는다. 까마득한 우측 경사면은 아찔한 현기증으로 왼쪽 다리와 스틱을 잡은 손에 힘을 쥐게 한다. 다리품을 붙드는 작은 전망대에 서니, 전날 다녀온 관음도와 섬목 선착장이 숲길아래 열린다. 탐방객의 안전을 살피는 방범용 CCTV를 지나니 죽암 해변이 열리고 호흡 마 져 가로막는 강풍이 옷 속을 파고든다. 독가촌(獨家村)이 있는 삼거리에서 석포마을 전망대에 올라서서 섬목 옛길을 확인하고 백운동 윗대바위 이정목이 있는 길을 따라 죽암 마을에 도착한다. 약 3시간 30분이 소요된 내수전에서 석포를 잇는 겨울 풍경은 황홀경이라 표현하기 부족함이 없는 만족감에 젖는다.

 울릉도는 험준한 지형 탓에 곧은길은 거의 없고 토착민들이 일상생활을 위해 이어놓은 옛길들이 곳곳에 이어져 있다. 주봉 성인봉을 필두로 여러 갈래의 골짜기를 낳고, 해안선을 둘러싸고 촌락(村落)이 형성돼 있다. 특히 마을과 마을을 잇는 옛길들은 주민들 간의 가교 역할과 소통로이며. 대부분 바다를 끼고 있어 조망과 지형이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악천우로 선박의 입출항이 어려울 때 주민들의 유일한 연결 수단으로 울릉도 주민들의 애환이 묻어있는 길이기도하다. 울릉도의 대표적인 옛길로는 ‘내수전~석포길, 태하등대길, 그리고 도동과 저동을 잇는 옛길이 손꼽힌다.

   
 넷째 날 아침, 도동 베이스캠프 창가로 스며드는 운무(雲霧)가 시야를 흐리며, 도동과 저동을 가르는 소질산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그림 속에 담긴다. 단백질 보충을 빌미로 삼겹살을 곁들인 아침밥상을 물린 트레커들은 장비 점검을 완료하고 울릉도의 최고봉 성인봉을 향해 왕복 9㎞설국(雪國)을 찾아 나선다. KBS중계소에서 시작되는 트랙을 들어서니 벌써 누군가 앞서간 발 자욱이 선명하다. 러셀(Russell)의 부담을 들어준 이에 감사하며, 내심 한 짐을 들은 기분이다. 좌측 사동리 트랙과 만나는 지점부터 눈이 무릎까지 빠지기 시작한다.

 앞선 발 자욱이 정면 삿갓봉을 향하지 않고 대원사 트랙과 이어지는 우회길을 선택했다. 우측 경사면 미끄럼에 유의하며 구름다리에 가까워 졌을 때 앞선 이들이 심설(深雪)에 길을 찾을 수 없다며 되돌아온다. 순간, 여성들로 구성된 트레커들의 난감한 표정속에 걱정이 잠길 때, 구세주(救世主)를 자처하는 용감한 두 젊은이가 허벅지까지 빠지는 경사면을 딛고 가까운 능선을 향해 앞서 트레버스(traverse)를 시작한다. 뒤를 이어 여성 트레커들은 깊이 파인 보폭을 따라 힘겹게 걷는다. 손에 잡힐 듯한 능선에 30분 넘게 필사적으로 올라 삿갓봉과 바람등대를 잇는 660m 능선에 닿는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 동안 지형도와 나침반을 꺼내 트레커들에게 도북(圖北)과 자북(磁北)을 설명하고 지도상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니 신기해 한다. 바람등대 암봉을 오르는 비탈 사면은 깍아지른 절벽을 에워 돌며 한발 한발 이동은 집중력을 요한다. 성인봉을 1.1㎞ 남겨놓은 안평전 분기점에서 선채로 점심을 해결한다. 고도계가 970m를 나타내는 지점에는 적설량 2m를 알 수 있게 이어놓은 나일론 줄이 눈 속에 높이를 숨기고 있다. 정상부 2m가 넘는 심설을 기어오르다시피 다다른 주봉(主峰) 성인봉(聖人峰)은 웅장한 위용을 품고 986.7m의 정상석을 반쯤 숨기고 있다.

 심설(深雪)을 뚫고 힘겹게 오른 정상 사진을 담는 다 분주한 트레커들을 잠시 벗어나 나리분지 전망대에 서는 순간, 허공에 뜬 듯, 눈 깜짝 할 사이에 온몸이 눈구덩이에 빨려 내려간다. 갑자기 내린 폭설에 소복하게 위에만 쌓인 눈 속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구멍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걸 미 쳐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온몸에 눈을 뒤집어쓰고 가까스로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붙잡고 올라서니 트레커들은 내가 눈구덩이에 빠진 것도 조차 모르고 있다. 만약 스스로 올라오지 못할 깊은 곳에 빠졌다면 어떤 사태가 일어났을지 아찔할 따름이다.

 나리분지로 하산을 꿈꾸던 트레커들의 기대감은 안전을 우선하는 리더의 책임감에 무언(無言)으로 일축한다. 하산 길, 극한을 체험한 이들이기에 눈길을 헤치는 몸놀림이 제법 익숙해져 있다. 정상을 향해 오르던 도전이 하산길에는 ‘집중력‘을 놓치지 말라는 외침으로 조심성 있는 마음가짐을 유도하면서 제법 여유로운 동작을 반복하게 한다. 멈추지 않는 위태로운 스릴(thrill)을 감내(堪耐)하며 하산까지 걸린 시간은 보편적 걸음을 훌쩍 넘긴 6시간을 지나고 있다. 안도와 성취감이 온몸을 휘감을 때 따뜻한 온기와 울릉도를 기억 할 맛깔스런 입맛을 당기는 식탐(食貪)이 정답 없이 다가옴을 직감하며 다들 마주하며 웃는다.

 객지(客地)에서 젖은 몸이 녹이고 쉴 수 있는 공간이 허락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전혀 의도한적 없는 이번 울릉도 6박 7일 트레일은 밝히지 못 할 비하인드 스토리와 인내(忍耐)를 가늠하는 여정이였다. 트레일에 동행해준 분들과 기사를 엮는데 도움 주신 (주)태성해운, 우리누리호(1688-9565)와 울릉도 독도 전문 여행사 여행과 사람(1899-5993)에 깊은 감사를 전한다. 울릉도의 미각(味覺)을 입안에 고이게 한 저동 해돋이식당(054-791-8104)의 따듯한 정(情)과 필미(筆尾)에 ‘꼭’ 전하고 싶은 북면 파출소 소장님의 고마움은 오래도록 기억 될 것 같다.

글 : 김봉조 낯선트레킹 대장
사진 : 최찬락 Mnet트레킹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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