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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냐 디스토피아냐
유토피아냐 디스토피아냐
  • 오태영 기자
  • 승인 2016.03.13 2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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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태영 사회부 부국장
 5대 0을 확신한다던 이세돌 9단이 첫판을 진 뒤 1판이라도 이겼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세 번째 판도 맥없이 무너져 버렸다. 전 인류는 이세돌만큼이나 경악했다. 인공지능이 이 정도일 줄이야 대국전의 이세돌만큼 사람들은 몰랐다. 그런데 이런 무지를 깨지기까지는 단 4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번 알파고 대전은 좌절과 경악을 넘어 두려움을 갖기에 충분하다. 인공지능은 우리도 모르는 새 스스로 학습하면서 인간을 초월하는 창의력과 상상력을 선보이며 새로운 세상이 턱밑까지 왔음을 보여줬다.

 알파고를 계기로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이 바꿀 인류의 미래는 지금까지의 세상과는 너무나 다른 새로운 세계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의사가 필요 없고 변호사와 회계사, 펀드매니저의 존재 이유가 없는 세상, 한마디로 인공지능이 지금까지의 인간세계 질서를 송두리째 뒤바꿔놓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파고에 두려움을 갖는 것은 기계가 인간을 이겼다는 경이로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인 두려움은 세상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변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는 좌절감, 인공지능이 대체할 미래에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공포감, 그럼에도 아무런 준비도 능력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무력감에 있다. 인공지능이 열게 될 새로운 세상이 내게는 유통피아가 되기보다는 디스토피아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다.

 인간세계는 산업혁명이라는 변곡점을 맞이할 때마다 새로운 질서가 생겨났다. 경제구조는 물론 정치구조도 변화시켰다. 1차 산업혁명은 왕족과 귀족의 지배질서를 허물고 자유민주적 자본주의 질서를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세상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 새로운 질서가 많은 사람들을 변방화시켰기 때문이다. 1차 산업혁명은 많은 긍정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도시화와 환경문제, 또 다른 형태의 인권유린, 제국주의를 탄생케한 거대자본의 축적을 가져왔다. 소비재 산업에서 중공업으로 옮겨간 2차 산업혁명은 양차 세계대전을 불러왔고,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3차 산업혁명은 정보격차와 빈부격차라는 짙은 그늘을 만들었다. 제조업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한 4차 산업혁명은 작업경쟁력과 효율성을 기치로 일자리를 급속도로 빼앗고 있다.

 인공지능이 주도할 세상은 이런 산업혁명과는 차원이 다를 것으로 보여진다. 그저 아직은 정확히 알 수 없는 새로운 세상이 인류를, 보다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기를 기대할 뿐이다. 그렇지만 준비된 극소수에게만 유토피아를 선사한 역사적 교훈에 비춰보면 이런 기대가 허망할 것이라는 것도 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기술의 경이로운 변화는 막을 수 없고 그 변화가 가져올 새로운 세계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면 많은 사람이 그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그 준비는 개인도 해야겠지만 보다 큰 책무는 정부와 사회에 있다. 오늘날의 정보격차와 빈부격차, 노동시장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변화하는 세상에 대한 준비를 개인의 몫으로 돌린데서 출발한다. 거대 사회시스템의 변화에 개인이 주도적으로 제대로 대응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괴물의 얼굴로 나타날지 천사의 얼굴로 나타날 지 모르는 세상의 변화가 코 앞까지 왔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불과 10년 후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되는데도 우리의 인재들은 변호사, 의사, 회계사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을 보면 그렇다. 누구 하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우리의 인재들이 10년 후면 사라지게 될 직업에 올인하게 놔둔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없다. 현재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는 글로벌적 요인보다는 우리의 내부 요인이 훨씬 크다. 세상은 급속도로 변하는데 10년, 20년 전의 성공신화에 안주했기 때문이다. 인적자원이 최대무기인 우리나라가 살아나는 길은 자명하다. 지금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많은 사람들이 지옥을 경험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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