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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太后(서태후)
2016년 11월 23일 (수)
송종복 sojobo@hanmail.net
   
▲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ㆍ(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西:서 - 서녘 太:태 - 클 后:후 - 왕비

 청나라 말기 미천한 궁녀출신 서태후는 어린 아들과 조카를 황제에 등극시키고, 뒤에서 국권을 걸머지고 국사를 자기의 치마폭에 넣어 밀가루 반죽하던 철의 여인이다.

 청나라 말기 함풍제(1850~1861)는 황태후가 아기를 낳지 못하자 후사가 다급해져 아무 궁녀나 통정해 세자 낳기를 바랐다. 그 많은 궁녀 중 서태후만이 유일하게 세자(재순)를 낳았다. 이어 함풍제가 죽자 세자가 6세 때 동치제(1861~1875)로 등극하니 그의 생모인 서태후는 뜻밖에 권좌에 올라 14년간 정권을 맛봤다.

 또 아들 동치제가 죽자 권력을 맛본 서태후는 황제서열을 무시하고 4살 되는 함풍제의 조카를 광서제(1875~1908)로 즉위시켰다. 그리고는 황제가 어리다는 이유로 33년간(1875~1908) 또 정권의 맛을 본다. 모두 47년간 거대한 중국을 자기의 치마폭에 넣어 주물렀다. 이때 광서제를 호위하는 8명의 원료와 대신 및 장군들이 있었다.

 서태후는 밤이면 자기 방에 불러들여 통정을 하고는 ‘너는 내 남편이다’고 말하니 남성들은 모두가 세상을 얻은 기분이었다. 만약 이들이 밖에 나가 서태후와 동침했다는 소문만 내면 순간에 목이 달아나기에 입도 방긋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 같이 모두가 마누라(서태후)의 처분만 기다려야 했다. 마치 우리의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장성들의 어깨에 별을 달아주며 ‘이제 자네는 내 아들이야’라는 말 한마디에 무능한 정부지만 ‘쿠데타’는 없었던 것처럼. 아무리 간 큰 놈이라도 애비한테 총을 겨누지는 않는다.

 북경에 있는 이화원은 서태후의 별장이다. 앞에는 인공으로 호수를 만들고 뒤로는 별장을 지었다. 그는 남성편력이 대단해 그와 상대한 남자는 3일 만에 폐인이 된다는 특이한 체질이다. 이 소문을 막기 위해 섬에 석굴을 파서 쇠창살로 가둬 죽였다는 설도 있다. 그는 미천한 궁녀 출신으로 인물도, 학력도 없고, 몸뚱이 하나로써 방탕한 호색가로 반세기간 권력을 누린 철의 여인이었다. 1908년 광서제와 서태후가 죽고 난 후 3세의 푸이가 선통제로 즉위하자(1908~1911) 이미 국운이 기울기 시작해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조는 종말을 거뒀다.

 여성이 권력을 맛보면 세상이 바뀌는 예가 한ㆍ두 번 아니다. 일본의 나가이 미치코가 지은 <여자가 나라를 움직일 때>라는 책에 세계를 뒤흔든 여성이 36명이다. 바로 경국지색이다. 지구를 움직이는 자는 남자이지만 그 남자를 움직이는 자는 바로 여자란 말이 있다. 우리도 신라 말기 진성여왕이 그랬다. 역사는 거울이다. 거울을 비춰 보는 정치가가 몇 명이나 되는지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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