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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교육으로 만들어진다
2016년 12월 08일 (목)
권우상 wskwan04@daum.net
   
▲ 권우상 명리학자ㆍ역사소설가
 식물은 재배로써, 인간은 교육으로 만들어진다. 교육은 자연, 인간, 혹은 사물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으로써 인간의 능력과 내부의 성장은 자연의 교육이며, 그 사용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인간의 교육이며, 인간을 자극하는 모든 사물에 대해 경험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사물의 교육이다. 그러므로 이를 가르치는 교사의 교육이 모순되지 않고 동일한 목적을 향할 때 비로소 그 아이는 원만한 생활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인간 교육도 어떤 가정 위에서만 가능하다. 그것은 어린이들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의 언행을 누구도 일치하게 지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육을 하나의 기술로 본다면 교육은 전혀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고 하겠다. 그것은 성공의 기본적인 조건이 능력 밖에 있으며 모든 노력을 집중해도 목표에 어느 정도 접근 할 뿐이며, 설령 목표에 도달해도 그것은 우연히 얻은 행운인 것이다.

 그렇다면 목표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연의 목표이다. 교육을 위해서는 자연, 인간, 사물 세 가지 교육이 일치해야 하기 때문에 인간의 능력 밖에 있는 자연의 교육에 인간, 사물 교육을 일치시켜야 한다. 자연이란 습관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수평으로 뻗어 나가려는 경향을 방해 받는 식물도 있다. 그러나 그 식물의 수액은 본래의 방향을 바꾸려 하지 않으며 이러한 경향은 성장하면서 계속된다.

 인간의 성향도 이러해서 동일한 조건 아래서 생각이나 부자연스러운 습관을 계속 유지한다. 따라서 생각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행동이 되고 행동은 삶이 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감수성을 갖기 때문에 주위 사물로부터 갖가지 자극을 받는다. 그리고 감각을 의식하면 곧 감각을 주는 것을 추구하기도 하고 피하기도 한다. 또 이성의 판단에 따라 행복이나 선이라는 관념에 의해 그것을 추구하기도 하고 피하기도 한다.

 이런 경향은 감수성이 예민해지거나 이성이 발달함에 따라서 더욱 확대되고 강해진다. 그런데 자연, 인간, 사물 세 가지 교육이 서로 다르기만 하면 별 문제가 없지만 만일 서로 모순되고 대립하거나 인간 자체를 위한 교육이 될 경우 자연이나 사회 제도와 싸워야 하며 인간을 만드느냐 시민을 만드느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모든 부분적인 작은 사회는 그 단결이 긴밀하고 확고 할 때는 큰 사회로부터 이탈하려고 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러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돼도 교육적 환경이 영향을 미친다. 어떤 가치관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각각의 선택에 대한 가치를 산정하게 되고 이를 토대로 선택을 하게 된다. 이러한 인간의 자아형성은 오랜시간에 걸쳐서 형성된다. 자신의 몇살이든 간에 그 시간동안에 외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으며 그 중 상당부분을 교육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교육의 중요성은 이뤄 말할 수 없다. 물론 내부적인 요인에 의해서도 인간, 자연,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길러지기도 한다. 바로 인간이 가진 본연의 성향이다. 인간의 인격형성에는 교육으로도 크게 관연치 못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대부분의 자국민들은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교육을 받는다. 이 때문에 모든 애국자는 외국인을 혐오한다. 외국인이란 애국자에게는 한 낱 단순한 사람에 불과하다. 이것은 매우 불합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별 문제가 없다. 중요한 것은 이웃들에게는 친절을 베푸는 것이다. 스파르타인들은 이기적으로 인색하게 외국인을 대했으나 그들이 사는 도시 안에서는 무사와 공평과 화합의 정신이 널리 퍼져 있었다.

 어느 스파르타 여인은 아들 다섯을 전쟁터에 보내고 전황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에 전지에서 노예가 도착해 “마님의 다섯 아드님은 모두 전사했습니다”라고 보고했다. 이 여인은 “이 미천한 놈아, 내가 그 따위를 물었느냐?”고 답했다. 이에 노예가 “전쟁에서 승리를 거뒀습니다”고 말하자 그 어머니는 신전으로 달려가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이 역시 시민인 것이다. 자연인은 완전히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그는 단위수이며 절대수인 까닭에 자신과 동등한 것에 대하여 관계를 가진다. 반면 사회인은 분모에 의해 가치가 결정되는 분자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질서 속에서 자연 감정의 우월성을 유지하려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모른다.

 이런 사람은 항상 자기 자신과 싸워서 자기 욕구와 의무 사이를 방황하는 까닭에 결코 인간도, 시민도 될 수 없으며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듯이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쓸모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항상 한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에 충실한 그 무엇이 되기 위해서는 언행을 일치시키고 자기가 취해야 할 태도를 분명히 하고, 불굴의 인내로서 밀고 나가야 한다. 이렇게 해서 한 인간이 되든지, 아니면 한 시민이 되든지 해서 훌륭한 인간의 본보기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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