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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페미니즘
2016년 12월 28일 (수)
이주옥 7618700@kndaily.com
   
▲ 이주옥 수필가
 내게는 이십 대인 딸들이 있다. 둘 다 꽤 이성적이다. 언변은 냉철하고 어쩌다 전달받는 글 속에서도 냉정하고 이성적인 생각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나름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언변을 가졌다고 자인하는 내게 한마디 하면 열 마디로 받아치는 데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딸들은 아이 때도 내게 할 말이 있으면 곧잘 편지를 보내왔다. 장장 두 장의 편지지에 빼곡하게 자신의 생각과 요구사항을 피력하는데 수정을 하거나 펜으로 지운 흔적도 몇 개 없을 정도로 청산유수였다. 그러다 보니 소통과 관계에 가장 두려운 존재는 늘 딸들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과 밥상머리에서 격렬한 설전을 벌이는 일이 많다. 특히나 요즘 더욱 그렇다. 사안이 심각한 현실이라선지 자주 의견이 충돌하고 언성이 높아진다. 나의 인식이나 관념과는 천지 차이인 그들의 인생관과 페미니즘에 오랫동안 고수해 온 내 관념과 의식에 심한 혼돈을 느낄 정도다.

 어쩌다 보니 나를 포함한 우리 어른들은 자식들에게 자랑스러운 세상을 만들어 주지 못했다. 크게는 국가적 위상도 그렇고 작게는 경제적 여유도 그렇다. 더구나 제대로 인성교육하지 못한 탓으로 남녀 불신과 혐오를 주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들의 부정적이고 불만이 가득함에 딱히 변명이나 해명도 못 할 입장인 것도 사실이다.

 딸들은 어느 날부터 비혼을 선언하고 있다. 정색하면서 대한민국에서 결혼에 대한 희망을 갖는 것부터 어이없지 않느냐고 하는데도 딱히 반박할 명분을 찾을 수가 없다. 남자에게 불의의 죽임을 당한 강남역 묻지 마 살인부터 요즘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까지 상대적으로 여자들의 이야기인지라 나와 더욱 마찰을 일으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페미니즘. 사전적 의미는 성 차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시각에서 여성이 억압받는 현실에 저항하는 여성해방 이데올로기를 말한다. 하지만 <여자들의 사상>의 저자 우에노 지즈코는 ‘여자는 여자의 경험을 언어로 말함으로써 사상을 만들어왔으며 남자들이 만들어 낸 사상만을 ‘사상’이라 부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좁은 시야의 편견에 여자들이 격투해 온 흔적이자 유산’이라고 역설했다. 둘 다 내게는 여전히 난해한 이론이다.

 나는 50대이다. 다분히 남성 우월주의와 가부장적인 분위기에 익숙한 나이다. 나름 시대적인 변화에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학문을 통한 의도적인 인식의 변화를 하고자 노력하지만 근본적으로 갖고 있는 고정적인 의식개혁엔 한계를 넘어서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까지 학습되고 주입돼 온 관습이나 통념이 내 행동이나 사상을 지배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내 관념은 알게 모르게 늘 아이들에게 적용됐을 것이다.

 올해는 유난히도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당하는 사건들이 부각됐다. 그 일련의 사건들을 접하면서 무심결에 남자도 문제지만 시공간 언행에 지나치게 자유로운 요즘 여자들한테도 문제 있지 않느냐고 했다가 딸들에게 예외 없이 무차별 공격을 당했다. 햇병아리 직장인이라 제때 빠져나오지 못하고 술자리에 오래 머문 아이에게도 시도 때도 없이 윽박지르고 잔소리를 했다. 야근하고 퇴근하는 아이를 새벽 3시에 길에 서서 기다리며 마음 졸이던 때에도 아이는 지나친 우려라며 고마워하지 않았다. 그 시간에 젊은 여자를 홀로 보내는 것에 분노하는 나를 세상 물정 모르는 엄마로 치부했다. 심지어 어디 나가서 그런 발언을 했다간 가차 없이 배척당할 것이라고 겁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페미니즘은 철저하게 ‘평등’보다는 여자와 남자의 ‘차이’에 입각하는 사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대한민국 사회에는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주정적 현실이 있고 가시화된 사회적인 폭력도 아직 만연하는 것이 사실이지 않은가.

 큰딸은 급기야 우에노 지즈코의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를 사다 주며 처음부터 다시 페미니즘 공부를 하라고 한다. 물론 관련서적을 수 없이 읽으면서 의식적인 변화는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두 딸이 시대의 조류에 편승한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에 회의적이며 의견이 엇갈린다. 나는 여전히 그들의 늦은 귀가가 두렵고 비혼 선언에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운 오십 대 엄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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