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이 같은 욕망이 사진이라는 피조물을 창조했다면 과한 표현일까.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는 방법은 렌즈라는 신개념의 혁신적인 눈으로 시간과 공간에 진입해 물리적인 흐름을 깨고 정지시키는 것이 현재로서는 유일한 대안이다. 브레송은 ‘결정적 순간’이라고 했다. 사진으로 보여주는 것은 삶의 한순간을 예리하게 관통하는 의식과 인식의 교호작용이며, 사진가와 그 대상이 찰나에 하나가 되는 순간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사진 찍을 때 한쪽 눈을 감는 것은 마음의 눈을 뜨기 위해서고, 찰나에 승부는 거는 것은 사진의 발견이 곧 나의 발견이기 때문이다”라고 철학적으로 정의 했다. 인생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임이 틀림없다. ‘시간’을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죽음뿐이라 했다. 어떤 이는 ‘시간’은 우주에서 가장 무서운 괴물이라고도 했다.
‘시간’의 중요성에 대한 인류의 가치는 오래전부터 형성됐던 것 같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모양새는 사람인데 앞머리는 숱이 무성하고 뒷머리는 완전한 대머리다. 양발 뒤꿈치에는 날개가 달려 있고, 한 손에는 저울을 쥐고 있으며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 사람도 아니고 짐승도 아닌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주인공은 ‘기회의 신’이라 불리는 ‘카이로스’ 동상이다. 더 재미난 것은 동상 앞의 설명이다. “앞머리 숱이 많은 이유는 내가 누군지 금방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고, 또한 나를 발견하면 쉽게 붙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뒷머리가 대머리인 것은 지나가고 나면 다시는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발에 날개가 달린 것은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해서이다.” 즉, 쉽게 알 수는 없으나 알아차리면 쉽게 붙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때를 지나고 나면 다시는 붙잡지 못하도록 최대한 빨리 사라진다. 또한 양손에 저울과 날카로운 칼을 들고 있는 것은 기회가 왔을 때 저울을 꺼내 정확히 판단하고, 칼같이 결단하라는 의미다. 기회가 올 때 재빠르게 포착하라는 것이다. 시간의 중요성을 통렬하게 알려주는 이야기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도 “기회는 준비가 행운을 만날 때 생기는 것”이라 했다. 항상 준비하고 있다가 ‘카이로스’가 지나가면 머리채를 움켜잡으라는 것이다. 늘 깨어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기독교에서는 물리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그리스어로 ‘크로노스(chronos)’라 부르고, 반면 영원한 질적인 시간은 ‘카이로스(kairos)’라 했다. 마냥 흘러가 버리는 ‘크로노스’와는 달리 ‘카이로스’는 찰나의 순간이 과거와 미래를 끌어안으며 상생하는 영원의 시간인 셈이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시간의 소중함을 새삼 인식해 본다. 특히 ‘크로노스’적 시간을 ‘카이로스’적 시간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지혜와 준비, 부단한 노력,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는 용기를 가졌으면 한다. 직관과 몰입, 평온, 그리고 불안과 두려움의 양극단이 공존하는 매우 특별하고 결정적인 시간, 나만의 ‘카이로스’를 만들어 가는 한 해를 희망한다. 유한한 인간의 삶을 영원하게 만드는 예술가적 삶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