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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이 주는 의미의 ‘파편’ 찾을 때
‘폭탄’이 주는 의미의 ‘파편’ 찾을 때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7.03.09 2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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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한열 편집부국장
 역사는 진보라는 큰 그림을 그리며 시대마다 위기와 도전을 던져준다. 오늘 한국 현대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 벌어진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결정하면서 인용ㆍ기각 중 한쪽에 손을 들면 역사의 물줄기는 걷잡을 수 없이 휘몰아칠 태세다. 지금까지 촛불을 들고, 태극기를 휘날리며 탄핵 결과를 자기 쪽으로 몰아붙이려고 핏발을 세웠다. 탄핵이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후폭풍이 문제다. 아름다운 승복을 내세워도 지금은 허망한 메아리로 들린다. 이날이 오기까지 우리 사회는 너무나 큰 대가를 치렀다. 대한민국 중심부에서 숱하게 열린 집회는 탄핵의 거대한 봉우리를 허물 기세였지만 어느 쪽이든 순수한 동기를 보이는 데는 실패했다.

 권력의 민낯은 아름답지 않다. 권력은 잡고 있을 때 빛나지만 권력을 잃으면 더없이 음침하고 궁색하다.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사람은 그 붙잡은 힘이 오래가길 바라고 권력이 쉬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애써 믿는다. 권력자가 입에서 한마디를 흘리면 거기에 의미가 붙고, 생각을 애매하게 말하면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을 줄 알고 속을 파려고 야단법석을 떤다. 힘을 쓰는 사람은 말을 두루뭉술하게 해서 여러 해석을 낳게 하고 간혹 막말을 해 본인의 강함을 떠벌린다. 권력자는 아무리 좋은 옷을 입어도 그 행실이 추하게 나타난다. 탄핵 결정이 임박할수록 결과를 예단하고 다음 권력자들이 길길이 뛰고 있다.

 정무직 공무원인 국회의원, 도지사, 시장이 직무를 보지 않고 선거활동을 하는 모양새는 곱지 못하다. 이들은 제19대 대선에 대해 중앙선관위의 공고나 지침이 없는데도 탄핵정국을 내세워 선거운동에 몰두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사전 선거운동을 할 법적 근거는 희박하다. 탄핵정국으로 국가가 심대한 위기에 빠진 것처럼 호도해 자신들이 ‘구세주’나 되는 양 바람을 일으켰다. 권력을 잡으면 더 큰 권력에 손을 뻗는 게 순리다. 같은 값이면 큰 떡이 낫다고들 하는데 권력이라면 오죽할까? 유럽 중세 시대에는 신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세상 모든 일이 신의 섭리에 따라 움직였다. 이런 생각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면죄부를 팔기는 식은 죽 먹기다. 신의 도움 없이는 우주가 움직일 수 없는데 이 땅에서 죄지은 사람을 돈 받고 천국에 보내기는 손바닥 뒤집기보다 쉽다. 신탁이 횡행하는 사회에서 권력은 절대적 힘을 뿜어낸다. 우매한 사람들에게 마음껏 힘을 휘두를 수 있는 권력자들은 마치 자신을 신처럼 따르도록 했다. 이생의 삶은 가볍고 고통은 순간이라 말하면서 사후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고 강변하는 권력자들은 그 당시 자신들만 현세에서 배를 불렸다.

 요즘 권력자들은 신의 도움 없이도 지구를 움직인다고 말한다. 신을 마음에 두지 않으면 차가운 이성이 있어서 자신의 권력을 절제하면서 휘두를 것으로 생각하지만 착각이다. 신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마음속에는 더 무서운 교만이 눈을 부라리고 있다. 신이 산 시대에는 권력자들이 신의 눈치라도 봤는데 요즘은 신을 걷어차고 자신이 전부인 양 고개를 뻣뻣하게 세운다. 목이 곧으면 언제 한 번은 꺾이기 마련인데 권력에 취하면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다. 탄핵정국에서 대선여론 상위를 차지한 권력자들은 자신들이 대권을 잡은 걸음걸이를 보인다. 꼴불견인 행동을 보면서 ‘권력이 좋기는 좋구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양반이다. ‘저러다 꿈 깨겠지’라는 가벼운 저주는 그래도 들을 만하다. 여기에 듣기조차 거북한 말을 쏟아붓는 사람을 보면 뜨악한 기분이 든다.

 오늘 대한민국에 폭탄 하나가 터진다. 이 폭탄의 위력은 대단하다. 이 폭탄은 쪼개진 대한민국을 다시 묶는 출발 신호가 될 수 있고, 더 골을 깊게 파는 무한한 힘이 될 수도 있다. 탄핵 결정의 파편은 여러 사람을 다치게 하고 권력의 향배를 뒤바꿀 수도 있다. 그만큼 힘이 세다. 폭탄이 터지는 세상에서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는 말을 떠올리는 건 어쩌면 생뚱맞다. 그래도 이 말은 권력이 살아있는 한 진리다. 중세 수도승들은 매일 ‘메멘토 모리’를 되뇌였다. 이른 아침부터 절제 생활을 하며 신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줄달음치면서 ‘죽음을 기억하라’고 읊조리는 게 앞뒤가 맞지 않은 듯해도 죽음은 결국 육신의 욕심을 꺾는 가장 효율적인 무기였을 것이다. 권력을 탐하려는 사람이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는 생각을 매일 아침 떠올리면 권력에만 천착하며 이상한 나라를 만들지는 않는다.

 권력을 쥔 사람은 수도승 같은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 수도승이 죽음의 의미를 깨달을 때 수련의 정진을 하는 것처럼 권력자는 권력의 무상을 철저하게 깨달을 때 권력은 좋은 무기가 된다.

 오늘 우리나라에서 터지는 폭탄이 역사가 진보 쪽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선포식의 축포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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