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13:06 (토)
무엇으로 훈육하는가?
무엇으로 훈육하는가?
  • 김재호
  • 승인 2017.03.26 1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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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호 경남기술과학고등학교장ㆍ공학박사
 교내를 돌다 보면 여러 가지 안타까운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화장실 휴지통 주변은 담배꽁초와 쓰레기로 너저분하다. 빈 교실(실습시간)에 불이 켜져 있는가 하면 선풍기가 윙윙 돌아간다. 방과 후의 교실도 청소한 것 같지가 않다. 책걸상 줄도 안 맞고 온갖 사물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창문도 사물함 문도 휑하니 열려있다. 한마디로 무질서로 가득하다. 부끄럽다.

 외국에 나가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1월 8일 일본으로 체험연수를 갔을 때의 일이다. 학교의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워 꽁초를 버리고 지저분하게 하는 모습을 보고 얼굴이 얼마나 화끈거렸는지 모른다. 연수 5일 동안 아침 출발 예정 시간을 잘 지키지 않아 빡빡한 스케줄을 그르칠까 가슴 졸였다는 현지 가이드의 따끔한 충고도 들었다. 창피했다.

 이런 현실을 목도하며 새삼 훈육을 생각해 본다.

 훈육(discipline)이란 엄격한 행동규칙을 따르게 하며 지키지 않을 때에는 벌도 주는 훈련 방법이다. 주목적은 바른 행실, 즉 윤리적 도덕적 질서와 행동 규범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훈육을 처벌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훈육 부장’하면 대개 부정적인 이미지를 연상하게 되는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 김용은 수녀는 훈육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훈육(discipline)의 어원은 가르치는 자를 따르는 신봉자이며 지지자(follower)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부모나 교사의 지도를 따르기보다는 가르치는 자의 인격과 인성을 닮는 것을 의미한다. 즉 아이들은 부모나 교사의 제자(disciple)로서 훈련하고 연습하면서 자신을 극복하고 조절할 수 있는 인격을 수양해 나가는 것이다. 제자 됨은 스승이 가는 길이라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따르겠다는 의지를 실현해 나가는 삶의 여정이다.” 무엇으로 훈육하는가? 김용은 수녀는 또 이렇게 말한다.

 “훈육은 외적인 많은 ‘말’이 아닌 가르치는 이의 고요한 ‘내면 풍경’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아름다운 가르침은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 소중한 것이 바로 자신의 내면 풍경이다. 그러므로 부모나 교사는 아이들을 훈육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가르칠 수 있는 용기, 즉 나 자신에게로 달려갈 수 있는 용기’가 있는지. 그리하여 스스로의 ‘내면 풍경’을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겠다. 그 풍경이 바로 우리 아이들의 모습, 우리 제자들의 현실이다.”

 이제 분명해졌다. 무질서한 교육현장, 학생들의 경망스런 행동과 처신 등은 바로 다름 아닌 부모와 교사와 어른들의 탓임이. 그리고 진정한 교사 되기란 얼마나 힘든지를 깨닫게 된다. 나는 제자가 목숨을 걸고라도 따를 인격을 지니고 있는가? 또한 나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나의 ‘내면 풍경’은 무엇인가? 나는 과연 그림자도 밟히지 않을 스승인가? 그러나 나는 이미 교사가 됐다. 앞으로 어떻게 교사 노릇을 할 것인가? 만인의 사표(師表)가 될 것인가? 노자의 도덕경 81장을 ‘배움’을 주제로 풀어쓴 파멜라 메츠가 쉬운(?) 실천 방법을 제시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날마다 교사는 학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 줄 행위를 되풀이한다. 날마다 나무를 자르고 물을 긷는다. 교사는 단순한 일을 실천으로 보여주며 가르치고 그럼으로써 학생들을 단순한 진리로 이끈다.” 우리가 생각하고 고민한 만큼 학생들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다. 교사의 직무는 일할 때와 쉬는 때가 구분되지 않기에 온 삶을 바쳐 학생을 기르는 수고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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