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4:33 (금)
더 강하게, 더 세게
더 강하게, 더 세게
  • 이주옥
  • 승인 2017.07.04 1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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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옥 수필가
 한 무리 고등학생들이 지하철 중앙통로에 서 있었다. 곱상하게 생긴 얼굴이며 교복 매무새가 꽤 관심받는 가정의 자제라는 느낌이 드는 아이들이었다. 얼굴엔 그늘이 없고 친구들과 관계도 나빠 보이지 않았다. 흐뭇한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연 그들의 대화도 들을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그들이 나누는 언어는 대부분 상스런 욕이 섞여 있었다. 꽤 원색적이었으나 듣는 아이들은 그다지 불쾌하지 않은 반응이었다. 아니 오히려 원색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학생이 주도적으로 그들을 아우르고 있는 듯 보였다.

 반듯하고 형식에 맞는 것이 오히려 자리를 잃어가는 것은 비단 청소년들의 언행뿐만이 아니다. 어른들조차도 자극적인 단어나 행동에 열광하는 시대다. 어중간하거나 적당한 것은 성에 차지 않고 자극적이고 강렬한 것들이 대접받는다.

 하루가 다르게 생겨나는 신조어들은 문법을 벗어난 지 오래다. 파격적이고 육감적인 단어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저 시대에 뒤떨어진 아재, 아줌마다. 모바일 게임도 더욱더 공격적인 것들이 마니아들에게 환영받고 있다. 대화보다 문자가 우세한 모바일 시대에 그저 일반적인 단어를 나열하면 싱거워한다. 임팩트 있는 짧은 단어 몇 개로 내 의사를 전달해야 하고 상대방의 의중을 헤아려야 한다. 그래야 이 시대에 발맞춰 가는 부류에 합류할 수 있다.

 요즘 사람들에겐 길고 오래된 것들은 진부하다. 그러니 긴 글을 보내는 것은 실례다. 오히려 문법이나 받침을 정확히 하면 진지충이 되고 설명충이 된다.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혀 배척당한다. 여기저기 난무하는 동영상도 필요한 부분만 순간 캡처한다. 그것은 ‘짤’이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무작위로 떠돌아다닌다. 대부분 굴욕감을 주는 일이 다반사다. 사람들은 그런 영상에 반응하며 대리 만족을 한다.

 언제부터가 한국엔 사람은 없고 벌레만 산다고 한다. 어느 특정인의 행위에 충(蟲)을 붙여 비하하고 비아냥거린다. 예를 들면 맘충(아이를 데리고 커피숍을 찾는 젊은 엄마), 한남충(명절에 아내에게 시댁 가자고 하는 한국 남자), 틀딱(지하철에서 경로석에 앉은 틀니를 한 노인) 등등이다. 가능하면 거칠고 원색적인 표현으로 상대방을 규정짓고 어느 부류로 편을 가른다. 가능하면 남 보다 튀어야 존재감이 되는 시대다 보니 강하고 튀는 언어나 행동으로 남의 시선을 끄는 일이 시대를 앞서간다고 생각한다. 병도 그렇지만 살아가는 속성은 언젠가는 내성이 생겨 무뎌진다. 강함은 더 강함을 요구하고 그러다 보니 제어할 수 없는 수위까지 온 것이 아닌가 싶다. 정치판에서도 막말로 시선을 당기고 관심을 유발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보시 중에서도 최상의 보시는 말보시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제러미 월드론 뉴욕대 로스쿨 교수는 지난 2012년 쓴 그의 저서 ‘혐오표현, 자유는 어떻게 해악이 되는가’에서 혐오 표현의 확장성을 지적했다.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 혼자가 아니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개인의 혐오감을 그룹 차원으로 키우게 만든다는 것이다. 소수의 인종, 종교, 성, 민족, 성적 정체성을 싸잡아 비난해 “소수자들이 정상적인 사회적 지위를 누리며 살아갈 수 없도록 사회 환경을 훼손시킨다”는 분석이다. 습관적으로 욕설 및 비속어를 쓰는 사람들은 이제 20%가 넘는다고 한다. 비정상적인 것이 정상적인 것이 되는 데는 다수의 동의와 활용이 큰 역할을 하는바, 아무리 독불장군에 독야청청해도 무리에 밀리면 당해낼 재간이 없는 것이 세상사 속성이다 보니 사람들은 그 무리에서 도태되지 않고 동행하기 위해 자연 따라가고 발맞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강자만이 살아남는 세상에 사람들은 더 강해지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말이나 행동도 마찬가지다. 한마디 언어와 하나의 행동에 그 사람의 인격과 품위가 있다 해도 격하고 강한 것이 어필하고 그것들에 밀릴 수밖에 없다. 그래도 격과 품위를 갖췄을 때 진정한 소통과 인간적인 온기는 자리할 것이다. ‘소리 없이 강하게’는 단지 물리적인 목소리의 크기만은 아닐 터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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